진정한 세대통합의 공동체를 목표로 2009년 4월 11일에 설립된 교회입니다.
사사기 2:10에 “그 세대 사람도 다 그 열조에게로 돌아갔고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며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일도 알지 못하였더라”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에서 ‘그 세대 사람’이란 하나님의 크신 능력으로 출애굽을 경험하고 메마른 광야에서 부으시는 은혜를 체험하고 가나안에 정착한 세대를 말합니다. 그리고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란 그들의 자녀 세대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그 자녀들을 다음 세대라고 표현하지 않고 다른 세대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세대 단절이 일어난 것이지요. 자녀들이 부모 세대와 같은 신앙을 갖고, 같은 삶의 방식으로 사는 세대가 아닌 다른 세대가 된 것입니다. 이것이 가나안 정착 이후 겪는 이스라엘 민족의 비극의 시작입니다.
‘세대’란 단순히 같은 연령대를 지칭하는 것이 아닙니다. 같은 문화를, 같이 경험하고, 같은 사고방식으로, 같이 행동하는 사람들이 같은 세대입니다. 따라서 자녀들이 다음 세대가 아닌 다른 세대가 되었다는 말은 문화가 다르고, 경험이 다르고, 다른 사고방식으로 다르게 사는 사람이 되었다는 말이지요. 그렇기에 가정이건 사회건 어느 공동체이건 간에 세대 단절이 일어났다는 것은 매우 불행한 일입니다. 따라서 세대 단절을 어떻게 예방하고 극복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오늘 한국교회의 숙제요, 우리가 안고 있는 짐입니다.
요즘, 많은 교회들이 세대 통합을 말합니다만, 아직까지도 그에 대한 분명한 모델이 없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저 주일에 예배 한번 같이 드리는 것이 전부입니다.
하지만 진정한 세대 통합은 어른이나 아이들이 예배 한번 같이 드리는 것으로는 이룰 수 없습니다. 어른이나 아이나, 기성 세대나 젊은 세대나 모두가 하나님 앞에서 한 인격체요, 한 예배자임을 인식하고, 기성 세대의 하나님이 자녀들의 하나님임을 똑같이 경험케 해야 합니다. 즉, 온 세대가 온 맘으로 온전히 함께 예배하는 공동체가 될 때 비로소 온 세대가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소풍교회는 자라나는 우리의 자녀들이 우리와 다른 세대가 아닌, 우리의 다음 세대로 자라나도록 예배와 교회의 모든 시스템을 세대 통합에 맞추고 있습니다.
우리의 자녀들이 우리와 함께 하나님의 영으로 말미암아 장래 일을 말하며 꿈을 꾸며 이상을 보는 다음 세대로 성장하며, 오대양 육대주를 누비며 하나님의 나라와 조국을 위해 크게 쓰임 받는 일꾼들이 되길 소망합니다.
소망이 풍성한 교회의 줄임말로서, 절망의 세대 속에서 소망을 잃고, 살아갈 능력을 상실한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풍성한 소망을 누리며 살게 하려는 의지가 담겨 있습니다.
어차피 우리는 평생 예배자로 살아야 합니다. 소풍 가는 날 기다리던 그 기대와 설레임으로 매일 예배를 기다리며 산다면 우리의 일주일이 얼마나 행복하겠습니까?
먹고 살기 위해 고단한 하루 하루를 사는 가운데서도 소풍 날 기다리듯 주일 예배를 기다리고, 소풍 가는 것처럼 교회를 가고, 소풍 날 기다리듯 주님 재림을 기다리며 행복한 가정생활, 행복한 사회생활, 행복한 교회생활을 해 보자는 것입니다.
세상이 갈망하는 복이 아니라 하나님이 추구하시는 복음을 전하려는 의지가 있습니다.
교회는 가이사의 것과 하나님의 것을 분명히 구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 구별을 성경은 거룩이라고 합니다. 그렇게 구별된 것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을 거룩한 자들, 곧 성도라고 합니다. 성도의 삶의 에너지는 세상의 복이 아니라 복음입니다.
모든 재정을 투명하고 바르게 집행하고자 하는 원칙이 있습니다.
돈은 날카로운 칼과 같아서 사람을 죽이는데도 쓰이고, 사람을 살리는데도 쓰입니다. 돈을 어떻게 다루는가가 그 사람의 수준이 되듯이 돈을 다루는 수준이 곧 그 교회의 수준입니다.
사랑의 교회(오정현목사) 와 총신대학교가 있는 대한예수교 장로회(합동) 교단에 속한 교회입니다.
말세가 되면 이단과 사이비가 활개친다고 했습니다. 요즘은 종교간의 대화를 주장하며 종교다원주의도 활개치고 있습니다.
그러나, 진리는 오직 하나 밖에 없습니다.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게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