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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주일 낮예배 설교 방송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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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의 길(9) 들을 귀가 열리는 인생 임병욱목사 2020-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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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마가복음4:21-25절 개역개정

21. 또 그들에게 이르시되 사람이 등불을 가져오는 것은 말 아래에나 평상 아래에 두려 함이냐 등경 위에 두려 함이 아니냐

22. 드러내려 하지 않고는 숨긴 것이 없고 나타내려 하지 않고는 감추인 것이 없느니라

23.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으라

24. 또 이르시되 너희가 무엇을 듣는가 스스로 삼가라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며 더 받으리니

25. 있는 자는 받을 것이요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도 빼앗기리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2020년 10월 18일 주일 낮예배 설교

 

제목 : 십자가의 길(9) 들을 귀가 있는 인생

본문 : 마가복음 4:21-25

 

‘여우랑은 살아도 곰이랑은 못 산다!’는 말이 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시어머니들이 며느리들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좀 못됐어도 말귀가 통하는 며느리랑은 살아도, 착해도 미련한 며느리랑은 못산다는 것이지요. 

그만큼 말 통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뜻이겠지요. 같이 살려면 무엇보다도 서로 말이 통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말을 잘 알아듣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 수 있습니다. 진짜 주변에 말귀를 못알아 들으면 그처럼 답답한 것이 없지요. 말을 못 알아들으면 ‘왜 말귀를 못알아 듣냐?’하지요? 우리는 항상 숨 쉬고 살면서도 공기의 고마움을 느끼지 못하고 사는 것처럼, 매일 말하고 살면서도 대화가 우리 인생의 성공 실패에 얼마나 중요한 지를 잘 못 느끼고 삽니다. 대화는 탁구 치는 것처럼 말을 주고 받는 것이지요. 말도 잘 해야 하고 듣기도 잘 해야 합니다. 그러나 말을 하는 것보다는 말을 듣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고 더 먼저입니다. 사람은 태어나서 듣기부터 합니까 말부터 합니까? 아기들은 집중해서 잘 들은 다음 그 들은 대로 말하기를 시작합니다. 얼굴도 보십시오. 귀가 많습니까, 입이 많습니까? 귀가 입보다 배나 많습니다. 그리고 입은 앞으로만 뚫렸지만, 귀는 양 옆으로 접시 안테나처럼 붙어서, 사방의 소리를 다 모아 듣게 되어 있습니다. 이게 뭡니까? 사람은 잘 들을 줄 알아야 된다는 겁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지으실 때 잘 들으라고 지으셨습니다.

우리 한국 사람들 대부분이 대화에 서툴다고 그러지요. 왕초보들입니다. 도무지 말들을 잘 못해요. 그런데 그 알량하게 말하는 것보다 훨씬 더 보잘 것 없는 것이 듣는 태도입니다. 남의 말을 잘 들어줄 줄 아는 사람들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 그래서 부부끼리도 안 통하고, 부모 자녀간에도 안 통합니다. 자식이랑 대화하다가 부모가 잘 들어주니 않으니까 자녀들이 말을 하다 말고 화를 내는 것입니다. ‘아이, 그게 아니라니까요, 왜 말을 못 알아 들어! 이제부터 엄마한테 말 안 해요! 휙 쾅!’ 제 방으로 가버립니다. 집 안에서 일어나는 이런 실패야 금방 회복될 수 있습니다만, 그러나 사회에서는 어디 그런가요?  그 결과가 치명적이고 심각합니다. 그래서 남의 말을 들을 때 잘 들어줄 줄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성경을 가만히 보면 역시 다 대화의 성공 실패에 대한 기록입니다. 하나님은 부지런히 인간에게 말씀하십니다. 어떤 인간은 그 말씀을 듣는데 성공합니다. 그러나 어떤 인간은 실패합니다. 그래서 어떤 가정은 성공하는데 어떤 가정은 망합니다. 그래서 어떤 나라는 흥하는데 어떤 나라는 쇠잔합니다. 성경은 하나님과 인간이 서로 말을 주고 받은 역사를 기록한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인간끼리의 대화가 아니라, 신과의 대화, 특히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법을 배우려는 것입니다. 인간끼리도 말이 통하면 잘 되는데 우리가 하나님과 말이 통한다면 얼마나 더 좋은 일들이 생기겠습니까? 성경은 그 사실을 증거한 책입니다. 오늘 본문도 신의 음성을 듣는 법을 가르쳐 줍니다. 들을 귀가 열려야 한다는 것이지요. 본문은 짧지만 두 덩어리로 되어 있습니다. 첫째 덩어리는 우리의 들을 귀는 어떻게 열리는지, 둘째 덩어리는 말씀을 어떻게 들어야 하는지를 가르치십니다. 성공적 경청법입니다. 

첫째 덩어리는 예수님께 집중하면 들을 귀가 열린다는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을 다시 한번 보겠습니다.

21또 저희에게 이르시되 사람이 등불을 가져오는 것은 말 아래나 평상 아래나 두려 함이냐 등경 위에 두려 함이 아니냐 22드러내려 하지 않고는 숨긴 것이 없고 나타내려 하지 않고는 감추인 것이 없느니라 23들을 귀 있는 자는 들으라. 

알듯하면서도 금방 감이 잡히지 않는 말씀입니다. 좀 더 쉽게 번역하자면 이렇게 됩니다. 두가지입니다. 우선 첫째 본문에는 사람이 등불을 가져오는 것으로 설명되어 있지만, 원문에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냥 등불이 온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가져온다는 말이 스스로 온다는 뜻입니다. 그러면 다시 볼까요? ‘등불이 오는 것은 말 아래나 평상 아래 있기 위함이냐? 등경 위에 있기 위함이냐?’ 그리고 원문에는 등불 앞에 ‘그’라는 정관사가 붙어 있습니다. ‘그 등불’이렇게 정관사가 붙어 있을 때에는 특별한 등불이라는 말이지요. 곧, ‘그 등불’은 예수님을 비유하는 것입니다. 의인법이지요. 즉, 예수님이 이 땅에 스스로 오신 것은 어두운 구석에 쳐 박혀 있기 위해서 오신 것이 아니라, 세상을 밝히러 오셨다는 말입니다. 세상을 깨닫게 하려 오셨다는 것이지요.

22절도 어렵게 번역되어 있습니다만, 쉽게 말하면 숨겨 둔 것은 드러나고, 감추어 둔 것은 나타나기 마련이다.라는 말입니다.

이 말씀을 좀 더 쉽게 정리하자면, 이런 말씀이지요. ‘세상에 빛으로 오는 나 예수는 자신을 숨기고 감추려고 온 것이 아니다. 온 세상에 나를 밝히 드러내고 내 빛으로 구석구석 세상 모든 곳을 비출 것이니라. 그러므로 들을 귀 있는 너희는 들을지니라.’ 

즉, 예수님이 오셔서 세상을 밝히면 모든 것이 다 밝히 드러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밝혀 주시려는 것이 무엇입니까? 깨닫게 하려는 것이 무엇일까요? 누가복음 24:27절, ‘이에 모세와 및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 그것은 바로 성경, 곧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죄로 인해 눈과 귀가 어두워진 인생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깨우쳐 주시려고 오셨습니다.

요한복음 1:14은 예수님에 대해서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로 오신 분’이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5장 39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39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 

여러분, 우리가 왜 성경을 읽어도 깨닫지 못합니까? 예수 없이 성경 읽고, 예수 없이 말씀을 보기 때문에, 내 지식으로, 내 생각으로, 그저 습관으로 성경을 읽기 때문에 아무리 성경을 읽어도 그 말씀을 깨닫지 못합니다. 깨닫지 못하니까 말씀이 내 삶에 역사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그 마음에 영접한 사람은 주의 음성을 듣는 귀가 열리는 줄 믿습니다. 예수님이 그 마음에 살아 계신 사람은 주님의 음성을 듣는 귀가 열리는 줄 믿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그 마음에 계신 분은 들을 귀가 열린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은 성경을 읽을 때, 설교를 들을 때, 눈물이 나오고, 기쁨이 생기고, 감동이 오고, 깨달음이 임합니다. 들을 귀가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그 복된 귀를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어떻게든 성경을 읽고 공부하려고 하고 또 주일 교회로 모여 말씀을 경청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는 성도들이 있습니다. 오늘 말씀은 그런 귀를 향하여 던지는 경고입니다. 왜 귀가 있는데 못 듣습니까? 막혔기 때문입니다. 들을 귀가 막혔기 때문입니다. 그 마음에 예수님 대신 세상 것으로 가득차 있기 때문에 들을 귀가 막힌 것입니다. 세상의 헛된 소리, 망령된 소리, 더러운 소리, 괴이하고 요상한 소리에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영적인 귀가 막혔습니다. 

그 마음에 주식을 너무 사랑합니다. 그래서 졸다가도 ‘주’자만 들으면 벌떡 깹니다. 성경은 아무리 읽어보아도 재미없습니다. ‘주식’이야기가 없기 때문입니다. 귀가 막혔기 때문입니다.

방송도 주파수가 맞아야 들리지요? 주파수가 안 맞으면 그 소리가 안 들립니다. 마음으로 세상을 사랑합니다. 쾌락을 사랑하고 죄를 즐깁니다. 그 주파수가 예수님에게서 떠나 있습니다. 그러면 주의 음성이 귀에 안 들어옵니다. 멍 해 가지고 들어도 무슨 말씀인지 감이 안 잡힙니다. 사랑의 주파수를 맞춰야 합니다. 안 그러면 들을 귀가 있어도 목자의 음성을 못 듣고 유리 방황하다 맹수를 만나거나 구덩이에 빠질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 보혈로 귀 청소 잘 하고 사랑의 주파수를 잘 맞추면 주의 말씀이 쏙쏙 귀에 마음에 들어옵니다. 달고 오묘한 그 말씀 생명의 말씀은 귀한 그 말씀 진실로 생명의 말씀이---아름답고 귀한 말씀 생명샘 이로다---. 비로소 이노래를 부르게 됩니다. 

기억하십시오. 예수님의 말씀 안에 영생의 씨앗이 있습니다. 죄의 용서가 있습니다. 위로가 있고, 능력이 있고, 천국이 있고, 아버지의 각양 좋은 은사와 약속이 있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를 쉬게 하리라.’ ‘딸아 안심하라, 네 믿음대로 될 지어다.’ ‘네 자리를 들고 일어나 가라.’ ‘소자야, 네 죄가 사해졌느니라.’ ‘더러운 귀신아, 거기서 나갈지어다.’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예수님을 그 마음에 영접한 사람, 그 마음에 예수님이 살아계신 사람은 예수님이 말씀이 들립니다. 성경 한 절, 한 절 읽을 때마다 예수님의 말씀이 들립니다. 설교 한마디 한마디 들을 때 마다 주님의 음성이 들립니다. 찬송 한마디 한마디 부르때 마다 천국 음악이 들립니다. 그러니 눈물이 날 수 밖에요, 그러니 회개가 터질 수 밖에요, 그러니 감사가 터질 수 밖에요. “날 사랑 하심, 날 사랑하심, 날 사랑 하심 성경에 써 있네.”고백할 수 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을 마음에 모셔드려 들을 귀가 열리는 인생 되시길 축원합니다. 

24절을 보십시오. ‘너희가 무엇을 듣는가 스스로 삼가라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요, 또 더 받으리니 있는 자는 받을 것이요, 없는 자는 그 있는 것 까지 빼앗기리라.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라는 말씀은 쉽게 표현하면 ‘되로 주면 되로 받고 말로 주면 말로 받는다'는 말씀입니다. 성경 말씀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는 말이지요. 말씀을 잘 듣고 잘 받아들이는 사람은 은혜도 그만큼 크게 주어질 것이요, 말씀을 잘 받아들이지 못하면 있는 은혜도 빼앗긴다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말씀의 은혜는 부익부 빈익빈입니다.

 

당장 주님께 외치십시오. ‘주여, 내 마음에 들어오셔서 내 귀를 열어 주옵소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귀를 열어 주옵소서.’ 성경을 통해 성령의 음성이 들리면 여러분이 알지 못했던 크고 비밀한 인생의 형통이 열릴 것입니다. 

예수님 때문에 말씀을 듣는 귀가 열려서 인생이 열리시는 저와 여러분 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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