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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강요 2부 10장 : 붕어빵 붕어빵 임병욱 목사 2024-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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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고린도후서3:14-16절 개역개정

14. 그러나 그들의 마음이 완고하여 오늘까지도 구약을 읽을 때에 그 수건이 벗겨지지 아니하고 있으니 그 수건은 그리스도 안에서 없어질 것이라

15. 오늘까지 모세의 글을 읽을 때에 수건이 그 마음을 덮었도다

16. 그러나 언제든지 주께로 돌아가면 그 수건이 벗겨지리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2024년 7월 22일 월요일

오늘은 기독교강요 210장입니다. 구약과 신약의 유사점에 대한 이야기이지요. 그것을 붕어빵이라는 제목으로 공부해 봅니다. ‘붕어빵이란 말은 보통 너무 닮았다는 뜻으로 쓰이지요. 붕어 모양을 한 같은 틀에서 찍혀 나오는 빵들이 서로 다를리가 없습니다.

구약과 신약도 서로 마찬가지입니다. 서로 붕어빵이지요. 성경에 대한 대표적 오해 중 하나가 바로 그 점을 무시하는 것입니다. 구약과 신약이 굉장히 다른 것처럼 보는 것이지요. 이젠 신약이 있으니 더 이상 구약은 필요 없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구약은 지상적이고 현세적인 복을 약속하고, 신약은 영적이고 내세적인 복을 약속한다고 오해하기도 합니다. 또 구약에서는 율법을 지킴으로 의로워지고 신약에서는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로워 진다고 착각합니다. 그리고 물론 구약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만 주신 약속이고, 신약은 교회에만 주신 것이라고 떠드는 사람들도 있지요. 그러나 그런 오해들은 다 성경을 눈 감고 보기 때문에 생기는 것들입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구약이나 신약이나 다 같은 언약입니다. 둘 모두 예수 그리스도를 중보자로 해서 하나님과 하나님의 자녀들이 맺은 언약입니다. 그래서 그 내용이 똑같고, 그 근거도 똑 같고, 그 약속에 참여 하는 수단, 방법도 똑 같습니다. 저 유명한 불량배 세르베투스와 재세례파의 일부 미친 사람들은 하나님이 돼지 무리같은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하늘 영생에 대한 희망은 주신 적이 없다고 말합니다. 이스라엘에게는 다만 지상에서나 잘 먹고 잘 살도록 약속도 하고 또 그렇게 이루어 주셨다는 것이지요. 세르베투스는 율법이 주는 믿음은 물론 죄의 용서까지도 다만 지상적이고 육적인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족장들과 맺으신 구약과 우리와 맺으신 신약은 붕어 빵입니다. 비슷한 것이 아니라 실제로는 똑같습니다. 그 시행 방법만 달랐던 것이지요.

그러므로 우리는 신구약의 관계에 있어서 다음 세가지 사실을 항상 기억해야 합니다. 첫째 하나님이 유대인들에게 주셨던 약속도 지상에서의 육적인 번영과 행복이 아니라 영적인 번영과 영생의 희망이었다는 것입니다. 둘째 이스라엘을 하나님에게 묶어 놓은 언약은 그들 자신의 노력이나 공로에 의해서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사랑에 의한 것이었다는 사실입니다. 셋째 구약의 백성들도 유일하신 중보자 그리스도를 알고 있었고, 오직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하나님께로 나가고 하나님의 약속에 참여하게 된다고 믿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구약과 신약은 그 언약의 내용이 같고, 언약의 근원이 같고, 그리고 언약에 참여하는 수단이 같다는 것이지요.

사도들의 증거를 보면 위의 세가지 사실이 더욱 분명해집니다. 즉 복음은 내세적이며 영적인 것(13:26;1:16;3:2; 1:4-5; 살후2:14)인데, 구약이 바로 그 복음을 증거하고 있다는 것입니다(1:2; 3:21-22). 아브라함이 그리스도를 소망했던 것(8:56)처럼, 구약의 목적도 항상 그리스도와 영생이었던 것입니다(처녀 마리아와 사가랴의 노래. 1:54-55; 72-73). 따라서 하나님은 구약과 신약의 백성들에게 같은 은혜를 베푸셨을 뿐 아니라 그 은혜를 나타내실 때 같은 상징(언약의 표징)들을 쓰셨습니다. 예를 들어 성찬식 같은 것입니다. 우리는 성찬식이라는 상징 안에서 영적인 은혜를 누립니다. 그러면서 생각하기를 구약의 백성들에게는 그런 기회가 전혀 없거나 있었어도 아주 변변치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구약 백성들도 다 같이 바다를 건넘으로써 세례를 받았고, 한 구름 속에서 세례를 받았으며, 하늘에서 내리는 다 같은 식물을 먹고 같은 음료를 마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 상징들을 들어 우리의 성찬식에 대한 경고와 교훈으로 사용하고 있으며 그것들을 신령한 것이라고 말하고, 그것들이 곧 그리스도에게서 온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고전10:1-6,11,14-17). , 구약의 백성들도 우리와 똑같은 영생의 약속을 받았고, 또 그 약속은 진정한 영적 성례전으로 인침 받은 것이라는 겁니다.

그리고 구약의 족장들이 보여주는 증거를 봐도 분명합니다. 옛 족장들이 받은 약속들은 현세적이고 육적인 것으로 보이기가 쉽지만 그 보다는 영적이고 내세적인 성격이 훨씬 강했습니다.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고 너희는 내 백성이 되리라.”(6:7; 26:12)는 말씀은 족장들이 받은 언약의 대표적인 표현인데, 이 약속은 단지 육적인 은혜가 아니라 영생에 대한 분명한 약속을 담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족장들은 하나님이 자기들에게 약속하셨던 것을 고스란히 다 받아 누릴 수 있었고 훗날 하나님과 예수님이 친히 그 사실을 증거해 주셨습니다(3:6;22:23-32;20:27-38).

이렇게 하나님의 언약이 내세적이고 영적이라는 사실은 우리에게 대단히 중요합니다. 왜냐고요? 하나님은 우리 신자들의 삶을 그 언약에 근거하여 다루시기 때문입니다. 아직 무슨 말씀인지 잘 모르시겠다고요? 하나님은 우리로 하여금 지상적이고 현세적인 삶만으로는 절대 만족하지 못하도록 철저히 연단하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결국 우리로 하여금 더 나은 본향, 더 나은 생명을 받아 누리게 하신다는 것이지요. 아담의 가정에 있었던 비극을 보십시오. 또 수많은 세월 방주를 짓고, 방주를 타고 백번 죽는 것보다 더 견디기 어려운 구원을 받은 노아의 삶은 어땠습니까(9:24-25)? 믿음의 조상이라는 아브라함은 또 어떻습니까? 믿음으로만 본다면 그는 십만인의 가치가 있는 사람입니다(12:3). 그러나 그가 약속의 땅 가나안에서 얻은 땅이 얼마나 됩니까? 자식은요? 평생을 방랑 생활이었고 심지어는 아내를 내어줘야 했습니다(12:11이하; 20:1이하). 조카 롯 때문에 겪어야 했던 마음 고생(13:5-9; 14:14-16)이나, 여러 번 죽기보다 더 괴로운 가정불화들(16:5; 21:9이하), 그리고 외아들을 죽여 바치라는 불같은 시험(22:1이하) 등 그는 무수히 많은 고난들을 당하면서 평생을 악전고투하며 살아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 환난의 골짜기를 통과하며 아브라함이 바라보고 붙잡게 되었던 더 나은 약속이 무엇입니까? 저희가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11:16). 아브라함과 모든 족장들은 그렇게 육신적인 현세의 복만이 아닌 그리스도의 때 볼 것을 기다리는 기쁨으로 평생의 모진 풍파를 견디어 낸 것입니다(8:56).

야곱도 마찬가지이지요. 그는 자기의 평생을 다음 한마디로 표현한 적이 있습니다. ‘짧지만 험악했다’(47:9). 야곱의 험난했던 삶은 일일이 설명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유명합니다. 그는 지독한 불행만을 겪은 사람의 특출한 표본이 되었습니다. 어쩔 수 없는 가출, 외삼촌 라반에게 혹독하게 착쥐당하고 살아야 했던 20년의 긴 세월, 네 명의 아내와 자식들의 지겨운 다툼, 형 에서의 위협, 요셉을 팔아 먹은 자식들의 배반, 장자 르우벤의 극악한 범죄(35:22), 유다의 추악한 실수(38:18), 베냐민을 잃을 뻔한 일 등(42:34,38) 야곱은 홍수같이 밀려 오는 연속의 재난 속에서 평생 단 한 순간도 평화로운 숨을 쉴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야곱은 여호와여 나는 주의 구원을 기다리나이다.”(49:18)라는 말로 자신의 죽음을 맞고 있습니다. 죽음이 곧 새로운, 더 나은 출발임을 믿었다는 것이지요(116:15; 34:21). 이렇게 야곱은 이 땅에서는 자기를 나그네로 여겼고 평생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며 살다가 약속대로 하나님이 준비하신 영원한 상급을 받았습니다(11:9-10; 13-16). 이처럼 족장들이 받았던 약속은 물론 지상적이고 현세적인 복을 포함하기는 하지만 본래 내세적이고 영적인 것이었습니다.

또한 다윗, 욥 등이 보여주는 증거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언자들의 선배였던 다윗의 예언들 속에서도 그런 증거는 차고 넘칩니다. 물론 후배 예언자들의 것보다는 희미했지만, 그러나 다윗의 예언도 하나님의 언약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역시 현세적이기 보다는 내세적이며 육적이기 보다는 영적이라는 것이지요. 그도 지상에서의 삶은 온전한 것이 못되고 믿음으로 사는 사람들은 자기의 행복을 확실히 다른 곳에서 찾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39:5-6,12;102:25-28;참조. 51:6). 한 때 다윗도 이 땅에서 악인들이 잘 되고 의인들이 고난을 받는 것 때문에 실족할 뻔했다고 고백하면서도 그의 고민은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가면서 비로소 해결되었다고 노래합니다(73:2-3; 16-17). 다윗이 말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자기백성에게 약속하신 것들은 이 땅에서는 거의 실현될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성도들은 자기 마음을 하나님의 성소로 들어 올려 하늘에 예비된 은혜를 바라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비록 지금은 그것을 눈으로 확실히 볼 수 없지만 믿음으로 이해하며 만족하는 것입니다(17:15; 92:5-7, 12-14). 그러므로 지혜 있는 자는 현세의 행복이라는 것들이 하루살이 같은 것임을 압니다. 그래서 현실에 너무 집착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더 나은 행복을 추구할 줄 아는 것입니다(49:6-14; 54:7-8).

고난의 대표 선수라 할 수 있는 욥은 또 어떻습니까? 그는 다음과 같은 놀라운 말을 합니다. “내가 알기에는 나의 구속자가 살아 계시니 후일에 그가 땅 위에 서실 것이라 --- 내가 육체 밖에서 하나님을 보리라.”(19:25-27). 욥은 자기의 소망이 땅에 붙어 있던 것이 아니었기에 그 고난 속에서도 중보자 그리스도와 미래의 영생의 세계를 기대할 수 있었습니다. 혹시 고난 뒤에 욥이 받은 갑절의 복을 부러워 하십니까? 정말 나중에 자식들을 갑절로 받을 수 있다면 지금 자식들을 포기하시겠다는 것입니까? 욥이 받아 누린 진정한 복은 곧 하나님이시고, 그가 줄기차게 붙잡았던 약속 또한 내세적이며 영적인 것이었습니다(42:5,17).

후기의 예언자들로 올수록 그리스도와 영생에 대한 계시의 빛은 더욱 더 밝게 빛납니다. 맨처음 아담에게 보이신 작은 불꽃(3:15)이 점점 커지다가(37:1-14; 26:19-21; 66:22-24; 12:1-2), 마침내는 의의 태양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 전 세계를 완전히 비추십니다(4). 이처럼 구약의 핵심도 그리스도와 그 안에 있는 영원한 행복입니다. 지금 우리가 약속 받은 천국은 바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이 받은 천국인 것입니다(8:11). 예수님도 부활하셨을 때 구약 아래 있던 많은 성도들을 그 부활에 동참시키심으로써(27:52-53) 신구약의 성도들이 다 같은 약속, 같은 영(15:8-11)을 받았다는 사실을 증명해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지금 유대민족이 율법에 의지하여 메시아의 지상 왕국을 기다리는 것은 수건으로 눈을 가리고 구약을 읽기 때문입니다. 그 수건은 그리스도께 와야 벗겨질 것입니다(고후3:13-15).

정리해 봅니다. 구약과 신약은 붕어빵입니다. 같은 약속이지요. 구약은 오래된 언약, 신약은 새 언약이란 뜻인데 둘 모두 예수 그리스도를 중보자로 해서 하나님과 하나님의 자녀들이 맺은 언약입니다. 그래서 그 내용이 똑같고, 그 근거도 똑 같고, 그 약속에 참여 하는 수단, 방법도 똑 같습니다. 구약의 지상적이고 현세적이고 육적인 것처럼 보이는 약속들이 사실은 신약처럼, 내세적이고 영적인 것입니다. 이 점을 이해 못하고 구약을 해석하면 엉터리가 됩니다. 오늘날 교회에 돌아 다니는 수많은 설교와 성경 해석들 성경 공부들이 엉터리입니다. 안타깝게도 그렇습니다. 이 땅에서도 우리는 복을 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약속 받은 진정한 복은 하늘의 것이며 신령한 것이고 그리고 영원한 것임을 잊으면 안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세상의 것들에 집착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십니다. 왜요? 하나님이 우리와 맺은 약속의 내용이 그런 것들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실 복이 그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세상 것에 집착하지 마십시오. 돈 버는 것, 승진하는 것, 출세 하는 것, 공부하는 것, 어떤 것이든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으십니다. 왜요? 세상 것에 집착하는 것은 미련하고 어리석은 짓이기 때문입니다. 마치 장난감 비행기를 포기하면 진짜 비행기를 주시겠다고 하는데 고집 부리며 장난감 비행기를 손에 움켜 쥐고 울며 불며 놓지 않으려는 어린 아이와 같습니다. 세상의 삶에 우린 최선을 다 해야 합니다. 열심히 공부하고 열심히 돈 벌고 열심히 충성 해야 합니다. 그러나 술을 자꾸 마셔서 술에 취해 버리듯 세상 것들에 집착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이 세상에서 좋은 것들로 주시면 그것들을 받으면 받을수록 더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으로 기뻐하며 열심을 품고 하나님을 섬기십시오. 그것이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퀴즈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 죽음에서 부활하실 때 구약 아래 있던 많은 성도들도 무덤을 열고 나와 죽음에서 부활했습니다. 그것에 대한 다음 설명 중 맞는 것은? 1)당시 무덤에 있던 자들은 그것이 예수님이 재림하신 줄로 착각했던 것이다. 2)특별한 목적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단지 예수님의 부활의 권능이 너무 강했기 때문에 당시 그 근방에 있었던 적지 않은 시체들에게 영향이 미쳐 부활한 것이다. 3)당시엔 핍박이 심했기 때문에 죽음에서 부활한 특수 부대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4)신구약 성도들이 다 같은 언약과 영을 받았다는 것을 증명해 주시기 위해서 그렇게 하셨다. , 4번이지요. 우리가 하나님과 맺은 약속은 영적이고 내세적이라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사랑하는 여러분, 구약과 신약은 붕어빵 붕어빵입니다. 구약을 해석할 때 신약을 해석할 때랑 똑같은 눈으로 해석 해야 합니다. 구약 따로 신약 따로 방황하지 마세요. 여러분은 성경이 선물하는 믿음으로 무장해서 성경이 약속하는 영적이고 하늘에 속한 복을 받아 누리고, 이 세상에서도 구름기둥 불 기둥으로 인도받는 복된 삶을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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