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주일 낮예배 설교 방송입니다
십자가의 길(6)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 임병욱목사 | 2020-09-29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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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누가복음5:29-39절 개역개정29. 레위가 예수를 위하여 자기 집에서 큰 잔치를 하니 세리와 다른 사람이 많이 함께 앉아 있는지라 30. 바리새인과 그들의 서기관들이 그 제자들을 비방하여 이르되 너희가 어찌하여 세리와 죄인과 함께 먹고 마시느냐 31.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나니 32.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 33. 그들이 예수께 말하되 요한의 제자는 자주 금식하며 기도하고 바리새인의 제자들도 또한 그리하되 당신의 제자들은 먹고 마시나이다 34.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혼인 집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을 때에 너희가 그 손님으로 금식하게 할 수 있느냐 35. 그러나 그 날에 이르러 그들이 신랑을 빼앗기리니 그 날에는 금식할 것이니라 36. 또 비유하여 이르시되 새 옷에서 한 조각을 찢어 낡은 옷에 붙이는 자가 없나니 만일 그렇게 하면 새 옷을 찢을 뿐이요 또 새 옷에서 찢은 조각이 낡은 것에 어울리지 아니하리라 37.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는 자가 없나니 만일 그렇게 하면 새 포도주가 부대를 터뜨려 포도주가 쏟아지고 부대도 못쓰게 되리라 38.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할 것이니라 39. 묵은 포도주를 마시고 새 것을 원하는 자가 없나니 이는 묵은 것이 좋다 함이니라
제목 : 십자가의 길(6)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본문 : 누가복음 5:29-39
[설교 요약]
한 사람 죄인이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그와 비슷합니다. 우리는 모두 본질상 다 진노의 자식이었습니다. 다리 밑 거지처럼, 사단의 손톱에 찍혀 평생 죄의 종노릇하면서, 매일 매일 먹고 사는 것 때문에 전전 긍긍하면서, 개가 그 토한 것을 도로 먹듯이 더러운 욕망과 정욕으로 헉헉거리며 하루하루를 살아가야 하는 비참한 죄인들이었습니다. 그러다 허무하게 죽음 앞에 무릎을 꿇고, 영원히 꺼지지 않는 지옥 불에 던져져, 고통을 당해야 했던 존재들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를 불러 주셨습니다. 김 아무개 박 아무개 최 아무개 내가 너의 아버지가 되고, 너는 내 자녀가 되리라. 죄에서 불러내어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 주셨습니다. 사망에서 건져 주셨습니다. 더러움에서 끌어내어 주셨습니다. 어떤 사람은 부모로 말미암아 부름을 받은 사람도 있고, 어떤 사람은 친구로 말미암아 부름을 받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사고나 질병으로 부름을 받기도 합니다. 각자 방법은 달라도 하나님은 이 모양 저 모양으로 우리를 불러서 자녀 삼아주십니다. 그리고는 나는 너의 하나님이 되고 너와 영원히 함께 하리라 말씀해 주십니다. 저와 여러분의 운명에는 이렇게 놀라운 사건이 일어난 것입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아까 그 거지 아이처럼 자기 앞에 펼쳐진 놀라운 변화를 잘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그 엄청난 은혜를 다 누리지 못합니다. 그 위대한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만 것이지요. 여러분 생각에는 내가 그 거지 소년처럼 내 인생에 그런 일이 벌어지면 잘할 것 같았지요? 하지만 많은 성도들이 실패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은혜를 누리기보다는 여전히 죄 안에 거합니다. 신나는 신앙생활은커녕 기본 신앙도 지키기 힘겨워합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왕자 같은 믿음 생활을 해야 하는데 거지 같은 생활을 여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변화에 적응하지 못해서 그럽니다. 한마디로 내가 변하지 않아서 그런다는 것이지요. 신분은 바뀌었는데 신분에 걸맞는 수준이 되지 않는 것입니다. 오늘 설교는 그 변화에 대한 문제입니다. 변화라는 말은 사실 현대인들에게 가장 익숙해져 있는 단어입니다. 선거 때마다 나오기도 하고, 생존경쟁에서 살아남으려는 기업들이 늘 외치는 말 아닙니까? 변화무쌍한 이 세상에서 우리도 행복하고 보람 있게 살려면 무엇보다도 변화를 이해하고 그 변화에 잘 적응해야 합니다. 변화에 실패하고서도 성공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오늘 본문 20절에 보면 사람들이 와서 묻습니다. ‘예수여,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새인들은 금식하는데 당신과 당신의 제자들은 도대체 왜 금식도 안하고 왜 우리 조상들의 전통을 지키지 않는 것이오?’ 예수님을 미워하던 사람들이 예수님을 잡으려고 던진 질문이지요. 예수님이 3가지 비유로 대답하십니다. ‘혼인집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을 때는 금식할 이유가 없느니라. 생베 조각을 낡은 옷에 붙이는 자가 없나니 그렇게 하면 기운 것이 낡은 옷을 더 못쓰게 만드느니라.’그리고는 가장 중요한 말씀을 하십니다.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지 아니하나니 그렇게 하면 부대가 터져 포도주도 쏟아지고 부대도 버리게 됨이라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느니라. 여기서 가죽 부대라고 하는 것은 양이나 염소 등의 가죽을 통째로 벗겨낸 후 목 부분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을 다시 기워 그 안에다 액체를 담아 놓는 데 사용된 용기입니다. 근동 지역에서는 이와 같은 가죽 부대가 아직도 쓰이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가죽 부대가 낡아 튼튼하지 못할 경우 거기다 새 술을 담아두면, 술이 발효되면서 부풀어 올라 낡은 가죽 부대는 반드시 터져버리고 맙니다. 따라서 새 술을 담아 둘 경우에는 반드시 새로 만든 가죽 부대를 사용해야 합니다. 예수님과 예수님의 가르침은 곧 새 포도주와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담으려면 새 부대가 필요한 것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의 낡은 부대로는 예수님을 감당치 못했습니다. 여러분, 옛 생각과 옛 생활로는 누구도 예수님의 은혜를 담아 누리지 못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부대가 찢어져 질질 새고, 그러다 터져 포도주도 버리고 부대도 버리게 됩니다. 적지 않은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님의 은혜를 받기는 받은 것 같은데 신앙생활 얼마 못하고 그렇게 찢어지고 터져버리는 이유가 거기에 있습니다. 본문에서 예수님이 가르치시려는 교훈이 무엇입니까? 새 것은 옛 것과 함께 섞을 수 없고, 옛 습관에 담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을 만나자마자 옛 전통을 버렸습니다. 옛 신앙을 버렸습니다. 예수님을 만나기 전의 옛 습관들을 버렸습니다. 그런데도 오늘날 많은 교인들이 실패하는 지점이 바로 여기입니다. 예수님을 알았습니다. 그의 교훈도 배웠습니다. 그러나 자기의 생각도 자기의 삶도 전혀 바꾸려 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자기 옛 집의 한 구석 방에 모시려 하고, 예수님의 교훈을 자기 옛 생각과 옛 습관의 한 구석에 대고 조각조각 기우려고 합니다. 예수님과 말씀들을 자기의 옛날 생각, 옛날 마음, 옛날 습관에 그대로 담아 보려고 합니다. 마치 새 헝겊을 옛 천에 기우려는 것이요, 새 포도주를 낡은 부대에 넣으려는 것이지요. 어떻게 되겠습니까? 오늘 말씀처럼 찢어지고 터집니다. 그렇게 어리석은 시도를 하니까 예수 믿는것이 신나고 즐겁고, 재미있는 것이 아니라, 어마어마한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며 사는 삶이 아니라, 늘 찢어지고, 터져서, 염려,근심,걱정, 불안, 초조해 하며 삽니다. 평안이 없습니다. 기쁨도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시작된 변화. 그 변화의 바람을 타지 못하고, 내가 변하지 않으면 두 가지 슬픈 일이 일어납니다. 하나는 내 인생이 찢어지고 튿어지는 것이요, 다른 하나는 가룟유다처럼, 에서처럼 죄와 마귀의 종이 되어 예수님을 팔아먹고 복음을 변질시키는 것입니다. 여러분, 잊지 마십시오. 예수님과 예수님의 말씀이 나를 변화시키도록 하지 않으면 돈이 나를 바꿉니다. 여자가, 남자가 내 신앙의 길을 바꿉니다. 이런 저런 욕심과 실패와 좌절들이 내 믿음을 변질시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 때문에 내가 변해야 합니다. 이 변화가 새 하늘과 새 땅으로 가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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