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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강요 2부 12장 : 완전한 다리 임병욱 목사 2024-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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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요한Ⅰ서1:1-3절 개역개정

1.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자세히 보고 우리의 손으로 만진 바라

2. 이 생명이 나타내신 바 된지라 이 영원한 생명을 우리가 보았고 증언하여 너희에게 전하노니 이는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우리에게 나타내신 바 된 이시니라

3.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전함은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니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누림이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2024년 7월 24일 수요일

 

오늘은 기독교강요 212장입니다. 사람으로 오신 중보자에 대한 이야기이지요. 그것을 완전한 다리라는 공부해 봅니다. 강물의 이곳과 반대쪽을 이어 주는 것이 다리이지요. 완전한 다리가 되려면 우선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다 이어져야 합니다. 또한 중간 토막이 사라져도 다리가 아닙니다. 부실공사 때문이라며 어느 날 갑자기 무너져 내린 성수대교로 인해 많은 사람이 희생되었습니다. 불완전한 다리는 그렇게 사람들의 생명을 앗아갑니다.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는 건널 수 없는 강이 흐릅니다. 죄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그 두 사이를 이어주는 다리이십니다. 이곳과 저곳 양쪽 모두에서 출발하는 다리입니다. 또 죄가 없으시기 때문에 중간 토막이 사라져 버릴 염려도 없습니다. 튼튼합니다. 영원합니다. 그래서 완전한 다리이십니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는 죄악의 강이 흐릅니다(59:2). 아무도 건널 수 없는 절망과 사망의 강입니다. 그런데 사랑이신 하나님은 그 강에 구원의 다리를 놓으시기로 작정하셨습니다. 그 계획은 순전히 하늘의 결정에서 나온 것입니다. 꼭 그래야만 했던 어떤 필연성이 있어서 그랬던 것이 아니란 말씀이지요. 그런데 하나님과 사람 사이를 이어 주는 그 다리가 되려면 참 하나님이면서 또한 동시에 참 사람이셔야만 합니다. 양쪽 끝 모두에서 출발해야 되니까요. 안 그러면 가다 마는 다리가 될 것 아니겠습니까? 그것은 다리도 아니지요.

그렇다면 누가 하나님 쪽에서 출발 할 수 있습니까? 아담의 후손 중 하나가 그럴 수 있을까요? 불가능한 일이지요. 죄인이니까요. 그러면 천사면 될까요? 역시 어림 없습니다. 천사들도 다 자기들의 머리덕을 봐야 하는 피조된 존재들이니까요(1:22; 2:10). 하나님이 직접 우리에게로 내려오시지 않으면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연결하는 것은 불가능하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임마누엘이란 이름으로 불려야 했던 것이지요(7:14; 1:23).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나님이 되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직접 건너 오셨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모습으로 오셔서, 우리와 함께 자라시고, 함께 거하시며, 우리 대신 아버지께 복종하시고, 우리 대신 하나님께 벌을 받으신 것이지요.

그리고 완전한 다리가 되려면 흠결이 있는 부실공사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완전한 중보자는 죄가 없어야 한다는 뜻이지요. 우리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찾아 오신 임마누엘은 치명적인 타락으로 죽음과 지옥에 떨어졌고 무수한 오점과 부패로 더럽혀졌고 모든 저주로 압도 당해 있는 우리가 도저히 할 수 없는 일들을 대신 해 주셨습니다 (5:8). 사람은 사람이되 전혀 죄가 없었다는 말씀이지요. 진짜 사람이 되신 임마누엘은 그렇게 다리의 저쪽 끝에서 이쪽 끝까지를 완전히 이어 놓으셨습니다(4:15; 딤전2:5).

그 중보자의 임무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우리가 다시 하나님의 은총을 받도록 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사람의 자녀인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지옥의 상속자들인 우리가 천국의 상속자가 되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첫째, 그 중보자께서는 우리의 형제가 되셔야 했습니다. 그는 우리의 살과 뼈를 취해 자기의 살과 뼈로 만드시고 우리와 하나가 되셨습니다(5:29-31;2:23-24). 우리와 한 형제가 된 것이고(20:17), 그의 형제된 우리는 비로소 그와 더불어 천국을 유업으로 받게 된 것입니다(8:17). 그리고 둘째, 참 중보자께서는 죄를 정복하고 죽음을 삼켜 버리며 마귀의 일을 멸하셔야 했습니다(요일3:8). 그가 아담 대신 하나님께 순종하시려면 꼭 사람이라야 했고, 또 우리 죄를 대신해서 죽으시려 해도 틀림없이 사람이셔야 했고, 또 죄와 죽음을 이기시려 하니까 하나님이셔야만 했습니다. 우리에게 이러한 중보자가 계신다는 것은 참으로 아름다운 소식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과 교제하고 또한 하나님과 교제한다는 사실을 보증하는 것이기 때문이지요(참조, 17:21; 요일1:1-3). 또한 그것은 우리도 그리스도처럼 죄와 죽음을 이기고 부활에 참여할 것임을 확증해주는 말씀이기 때문입니다(참조,고전15:20-22; 살전4:14).

그리스도께서 사람이 되신 유일한 목적은 오직 우리를 구속하시기 위한 것입니다. 오시안더(Osiander)나 세르베투스(Servetus) 같은 영원한 이단자들은 인류를 구속할 필요가 없었다 하더라도 그리스도는 역시 사람이 됐을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망령된 자들의 호기심에는 항상 날개가 달리는 법입니다. 그들은 또 이 점에서도 기록된 말씀의 범위를 한참 넘어 가고 있습니다(참조,고전4:6). 그러나 성경의 기록은 분명합니다. 그리스도는 모든 창조물보다 먼저 나신 자(1:15)이시며, 타락하기 이전에도 물론 모든 피조물의 머리셨던 그리스도께서 우리 몸을 입으신 것은 오직 우리의 구속자가 되시려는 것 때문이었다고 성경은 선포합니다(참조, 딤전1:15; 요일4:14; 5:6). 요한도 말씀이 육신이 되신’(1:14) 이유는 인류의 반역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1:9-11). 그리고 이어 하나님이 아들을 세상에 사람으로 보내 주신 이유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3:16)고 선포합니다. 마태도 예수님의 말씀을 그대로 인용하여 인자가 온 것은 잃은 자를 구원하려 함이니라.’(20:28) 고 증거합니다 (참조,10:17,15,18; 12:27-28,23). 또한 모든 사도들도 이구동성으로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사람으로 우리에게 오신 것은 오직 우리를 구원하는 완전한 다리가 되기 위해서라는 것이지요. 피 없는 중보자는 있을 수 없기 때문에 그리스도는 사람이 되셔야만 했습니다(9:22). 그가 죄 아래 있는 우리를 돕는 영원한 대제사장이 되시기 위해서는 오직 사람으로 오셔야 했던 것이지요(53:4-6; 9:11-12; 5:1; 고후5:19; 8:3-4).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사람이 되신 이유나 목적에 대해 다른 설명들을 덧 붙이는 것은 지극히 망령된 일입니다.

그렇다면 아담이 죄를 짓지 않았어도 그리스도는 역시 사람이 되셨을까요? 오시안더는 그랬을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사람으로 오신 것과 우리를 사랑으로 구원하시는 일은 서로 상관 없을 수도 있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성경은 그 둘이 서로 뗄 수 없는 관계임을 선언합니다. 이것 없이 저것 없고 저것 없이는 이것도 없다는 말씀이지요. 그러니까 그리스도의 사람 되심은 오직 우리의 죄와 상관 있는 것입니다(참조, 9:28, 28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 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 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시리라.”) 사도 바울도 에베소서에서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신 목적을 설명하면서 신비한 예정의 높은 세계까지 열어 보임으로써 오시안더가 보여주는 것같이 방자하고 경망한 호기심에 굴레를 씌어 줍니다. 4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5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6이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 7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속량 곧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1:4-7) 세상에 나타난 모든 일은 다 창세 전에 하나님이 작정하신 것입니다. 이미 영원 전에 하나님은 인류의 불행을 고쳐주시기로 작정하신 것이지요. 그리고 하나님의 그 뜻은 우리를 그리스도의 피로 구속하여 주심으로써 성취하십니다. 이 두 가지 분명한 선언 밖으로 넘어가려는 자들은 불경건하고 망령된 호기심으로 전혀 새로운 종류의 그리스도를 만들어 내려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과 하나님이 하시는 오묘하신 일들을 향한 우리의 호기심은 철저히 굴레 씌워져야 하지요. 밝히 드러내 주신 말씀을 철조망삼아 울타리를 쳐 놓고, 그 안에서 만족하며 즐거워할 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영원이란 단어에 대해서 조차 거의 알고 있는 것이 없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다음 두 말씀을 울타리로 삼아봅시다. 첫째, 그리스도는 죄인을 구원하시려 사람으로 임하셨습니다(딤전1:15). 그리고 이 은혜는 영원 전부터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딤후1:9). 우리는 결심하고 끝가지 이 은총의 울타리 안에만 머물러야 할 것입니다(3:9). 헛된 상상의 날개를 꺾으십시오(참조114,‘철조망의 기적’).

하나님의 형상에 대한 오시안더의 주장은 정말 너절한 것입니다. 사람이 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았다고 말하는 것입니까? 오시안더의 설명은 이러합니다. , 하나님은 이미 영원 전부터 그리스도께 육신을 입히시기로 작정하셨고, 사람은 그러한 그리스도의 본(육신)을 따라 지음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리스도께서 사람의 모습을 입고 세상에 오신 것이 아니라 도리어 사람이 장차 오실 그리스도의 모습을 따라 지음 받았다는 말이지요. 그러면서 천사는 그리스도의 형상(사람의 모습)이 없으므로 사람보다 지위가 낮다고 말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오히려 사람의 몸을 입으신 그리스도께서 천사보다 못하다고 말합니다(참조,8:5;2:9;고전11:10). 그리고 천사의 존귀한 위치를 부지런히 증거해 줍니다(참조,103:20; 14:10; 13:41; 22:30). 천사도 하나님의 형상을 받은 피조물로서 사람과 같은 몸이 없지만 그 존귀하기가 사람보다 못하지 않다는 것이지요(참조, 20:36; 22:8-9).

또한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았다는 것은 인간이 다른 모든 생물에 비해 탁월한 그 무엇을 받았다는 것인데, 사람의 몸이 다른 동물의 그것에 비해 현저히 다른 그 무엇이 될 수 있겠습니까? 아니지요. 사람을 동물과 완전히 구별 시켜 주는 것은 몸이 아니라, 사람의 영혼과 그 속에 새겨진 인간만의 독특한 특징들입니다(참조,115. 1:27이하). 또한 성경은 줄기차게 우리가 그리스도의 몸을 따라 창조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몸을 입고 세상에 오신 것을 증거합니다. 그리스도는 첫째아담이 아니라 둘째아담이라는 것입니다(고전15:47). 아담이 그리스도의 후손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아담의 후손이라는 말씀이지요(3:38). 그리스도께서 사람의 몸을 입으셨다는 점에서는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정하신 때에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던 그리스도는 영원 전부터 사람의 몸이랑 상관 없이도 하나님의 형상의 광채가 충만하셨고, 만유의 머리로 계셨던 바로 그 하나님이십니다(1:18,15; 4:4-5). 그러므로 아담이 그리스도께서 입고 오시기로 준비 되었던 몸을 미리 빼앗아 입고 온 것이 아닙니다. 그 몸 때문에 하나님의 형상을 입은 것이 아닙니다. 오직 그리스도께서 아담의 몸을 입고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오시안더는 이상한 방법으로 그리스도를 온전한 중보자의 위치에서 끌어 내리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이어주는 완전한 다리가 되려면 최소한 다음 두 가지 조건이 충족되어야 합니다. 첫째, 하나님이시면서 동시에 사람이셔야 합니다. 그리고 둘째, 사람이시되 전혀 죄가 없으셔야 합니다. 그리스도 한 분 외에 누가 그럴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속지 말아야 합니다. 세상이 아무리 박수를 쳐도, 세상이 아무리 욕을 해도 예수님만이 구원으로 인도하는 유일한 다리, 완전한 다리라는 사실을 양보하지 말아야 합니다.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4:12)사도행전의 외침입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14:6) 예수님의 외침입니다. 우리도 늘 그렇게 외쳐야 살아야 합니다.

저와 여러분은 늘 완전한 다리에서 놀고 완전한 다리에서 살고 완전한 다리를 건너 결국 천국에 들어가는 복을 누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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