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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강요 2부 13장 : 왕자와 거지 | 임병욱 목사 | 2024-11-07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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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요한Ⅰ서4:2-3절 개역개정2. 이로써 너희가 하나님의 영을 알지니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요 3. 예수를 시인하지 아니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 아니니 이것이 곧 적그리스도의 영이니라 오리라 한 말을 너희가 들었거니와 지금 벌써 세상에 있느니라
오늘은 기독교강요 2부 13장입니다.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에 대한 이야기이지요. 그것을 왕자와 거지라는 제목으로 공부해 봅니다. 미국의 소설가 마크 트웨인(Mark Twain.1835-1910)이 쓴 ‘왕자와 거지’를 아시지요? 어른이라도 단숨에 읽지 않고는 배길 수 없을 정도로 재미 있습니다. 어느날 영국의 왕자 에드워드는 궁전 문 밖에서 시위병에게 떠 밀려 쓰러지는 한 거지 소년을 만납니다. 왕자는 그 거지를 궁전 안으로 들이지요. 그런데 그 둘은 지독히 닮은 게 아닙니까! 호기심에 왕자와 거지는 서로 옷을 바꿔 입어 봅니다. 그리고 그것으로 그 둘은 운명이 바뀝니다. 왕자는 거지가 되어 궁 밖으로 쫓겨 나고, 거지는 궁 안에서 왕자 노릇을 해야 했습니다. 졸지에 거지가 되어 쫓겨난 왕자는 갖은 학대와 멸시와 위험을 겪습니다. 그러나 결국 거지가 되었던 왕자는 자기의 궁 안으로 되돌아가는데 성공하고 왕위에 오릅니다. 참 재미있는 이야기입니다. 혹시 마크 트웨인은 그 소재를 성경에서 얻은 것이 아닐까요? 하늘 보좌를 버리시고 이 땅에 종의 모습을 입고 오셨던 그리스도의 이야기에서 말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진정한 인간 본질을 취하시고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이십니다. 하지만 그리스도께서 사람의 몸을 입고 오신 것을 부인하는 이단들이 있었습니다. 옛날에도 가상현실과 실제를 구분하지 못했던 사람들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들은 초대교회를 어지럽혔던 가현설(Docetism)의 견해로서 후에 어거스틴은 이들을 단호히 배척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실제로 사람 몸을 입고 오신 것이 아니라 ‘그런 것처럼 보였을 뿐’이라는 것이지요. 거룩하신 하나님이 어떻게 더러운 인간의 몸을 입으실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만약 그러셨다 하더라도 잠시 빌려 쓰시다가 십자가에 달리시던 때 그 몸을 버리고 떠나셨다는 것입니다. 주후 150년경 로마에서 가르쳤던 마르키온의 추종자들은 그리스도께서 육체를 입으신 것이 아니라 환영(幻影)을 입으셨다고 주장하고, 주후 227년경 사망한 마니(페르시아)와 그의 일당들은 그리스도께서 하늘의 육신을 받으셨다고 공상했습니다. 근래에는 마르키온 파에 속한 멘노 시몬스(Menno Simons 1496-1561, 후에 화란의 제세례파를 재건)가 그 선배들의 뜻을 이어 받아 헛소리를 하고 있습니다. 이런 모든 사상들은 다 영지주의(노스티시즘 Gnosticism)에서 배웠습니다. 영지주의자들은 물질은 절대 악하고 영은 선하다는 이원론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래서 영지주의자들이 보는 구약의 하나님은 참 하나님이 아닙니다. 참 하나님이 악한 물질을 창조하실리가 없다는 것이지요. 구약에서 창조주로 묘사된 하나님(Demiurgos)은 참 하나님으로부터 파생된 서열 30번째에 해당하는 신(Aeon)으로서 저급한 신이라고 주장합니다.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 보여진 신약의 하나님이 참 하나님이라고 말합니다. 그리스도는 참 하나님을 세상에 보여주기 위해 세상에 보내진 특사라는 것이지요. 따라서 그리스도께서도 더러운 인간의 몸을 입으실 수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십자가 사건 때까지만 잠시 그 사람 몸(실제 인간)을 빌려 쓰셨거나, 혹은 제자들이 본 그리스도는 환상이었을 것이라는 것이지요. 정말 어처구니가 없습니다. 자기들 멋대로입니다. 저들 주장의 종착역은 결국 이것입니다. 즉, 그리스도께서 실제 사람 몸을 입고 오시지 않은 것이라면 당연히 그리스도께서 죽으신 것도, 또 부활하신 것도 가짜라는 것이지요. 놀랍지요? 사실은 이 말을 하고 싶어서 저들이 그렇게 여러 말을 한 것입니다. 저들은 성경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시 쓰고 싶어 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그들을 ‘적그리스도’라고 부릅니다(요일4:2-3; 요이1:7; 골2:8-9). 이단들의 너절한 궤변들은 진정 허망한 것입니다. 우선 그리스도의 몸이 하늘에 속한 몸이라고 주장하는 마니(Mani, AD.216–274)의 말을 생각해 봅니다. 그는 기독교와 불교와 조로아스터교를 혼합하여 영적 세계와 물질 세계간의 대립을 강조하는 이원론적 종교인 마니교를 창시하였는데, 고린도전서 15:47-48절을 근거로 그리스도의 몸은 ‘공기’(空氣)의 몸 이라고 주장을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공기의 사람’이 아니라 아브라함과 야곱의 후손을 복의 근원으로 세우신 것이고(창12:3; 17;2; 18:18; 22:18; 26:4), 또 공중의 사람이 아니라 다윗의 후손에게 영원한 왕위를 약속하셨습니다(시45:6; 132;11). 그래서 그리스도는 육신의 혈통으로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으로 오신 것입니다(마1:1; 롬1:3). 그리스도 자신도 자신이 사람으로 오신 것을 강조하시기 위해 자신을 자주 ‘인자’(사람의 아들) 라고 부르셨습니다(참조.마8:20; 9:6;12:40;16:27; 시8:4; 히2:6,14). 그리고 마니가 오해한 고린도전서의 그 구절은 그리스도의 몸이 하늘에 속한 그 무엇이라는 말이 아니라 우리를 다시 살리시는 영적인 힘을 강조하려는 말씀이지요. 고린도전서 그 15장 본문 전체가 소리 높이 외치는 것이 무엇입니까? 우리와 같은 본성을 가지셨던 그리스도의 몸이 부활하신 것처럼 우리도 그렇게 부활할 것임을 강력히 소망하라는 것이 아닙니까? 만약 그리스도의 몸과 우리 몸이 전혀 다른 것이라면 그 소망은 물거품이 되고 말기 때문이지요. 또 그와 비슷한 망상으로 그리스도의 몸이 환상에 불과했다고 주장하는 마르키온(말시온)의 주장이 있습니다. 그는 물질 세계와 영적 세계를 엄격히 구분하면서 그리스도가 물질세계에 의해 더럽혀질 수 없다고 주장하면서 예수는 단지 인간의 형태로 나타났을 뿐이며, 실제로 물리적인 육체를 입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수도 없이 많은 곳에서 그리스도께서 친히 우리와 똑같은 연약한 몸을 입으셨다는 것을 증거합니다(참조.요일1:1-2). 그리스도는 ‘혈육에 속하셨고’(히2:14,16), 우리를 자신의 ‘형제’라 부르시고(히2:11,17), 우리의 ‘연약함을 체휼하신 대제사장’(히4:15)이시라는 것입니다. 바울의 주장처럼 세상 죄는 우리와 똑 같은 육신을 입은 자가 대속해야 했던 것이지요(롬8:3). 그리스도께서 이처럼 완벽하게 우리와 같이 되셨다는 점에서 확신할 수 있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아버지 하나님이 사람으로 오신 그리스도께 주셨던 모든 것은 또한 우리의 것이 된다는 것입니다. 우린 모두 그 소망을 든든히 붙들어야 합니다. 그것이 곧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세상에 사람으로 보내신 또 하나의 중요한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저 유명한 본문, 빌립보서2장 5절부터 7절 말씀에도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에게 겸손과 순종의 도를 가르치시려고 자기의 신성이 잠시 육신의 휘장으로 가리우는 것을 허락하셨다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자진해서 ‘자기를 비우셨다’는 말씀은 하나님이시기를 포기하셨다는 뜻이 아니라 하나님으로서의 영광이 ‘종의 형체’로 잠시 가리워지도록 허락하셨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께서 우리와 똑같은 몸을 입으셨다는 말씀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입니까? 또 ‘높임을 받으셨다’는 표현도 그렇습니다. 그가 우리와 똑같은 몸을 입으시지 않았다면 높임을 받으실 일도 없는 것이지요. 또 저들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가 그리스도와 더불어 한 형제가 되었다(히2:11)는 말을 무리하게 트집 잡습니다. 그렇다면 불신자들도 다 그리스도의 형제냐는 것이지요.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는 혈육에서 나지 않고 오직 믿음을 통해서 영으로만 나는 것입니다(요1:13).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만들기 위해 사람이 되셨다고 할 때 그 말이 모든 사람 누구에게나 미치는 것이 아닙니다. 또 저들은 ‘맏아들’이란 표현 때문에 신경이 거슬리는 것 같습니다. 그리스도께서 ‘형제 중의 맏아들’이 되시려면(롬8:29), 그리스도는 맨 처음에 아담에게서 나셨을 것이라는 주장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맏아들’이란 말은 연령에 관한 것이 아니지요. 그것은 영예의 정도와 숭고한 권능에 있어서 ‘으뜸’이 되신다는 뜻입니다. 지금까지 살펴 본 저들의 억지 주장은 창세기 3장 15절의 약속만 한번 깊이 생각해 보아도 아침 안개처럼 사라져 버릴 것입니다. 하나님은 에덴 동산에서 쫓겨나는 여자가 절망에 빠지지 않도록 위대한 소망을 선물로 주시는 것인데, 그것은 그리스도와 모든 인류에 관계된 것이었습니다. 즉, 그리스도는 사람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사람에게서 나셔야 했던 것입니다. 저 이단들은 아브라함의 ‘씨’라는 말과 다윗의 ‘후손’이란 말들이 다 풍유(알레고리)적인 표현이라고 말합니다. 참으로 사악하고 미련한 짓입니다. 바울은 그리스도를 ‘다윗의 아들’이라고 부르기 전에 ‘육신으로는’이란 말을 덧붙이고 있습니다. (롬9:5)“5조상들도 그들의 것이요 육신으로 하면 그리스도가 그들에게서 나셨으니 그는 만물 위에 계셔서 세세에 찬양을 받으실 하나님이시니라 아멘.” 그것이 그리스도의 인간성을 말하는 것이 아니면 무엇이겠습니까? 또 ‘그 태중의 아이’(눅1:42), ‘네 몸의 소생’(시132:11; 삼하7:12; 행2:30) 등의 표현은 그리스도께서 육신으로 오셨음을 말하는 것이 아니면 무슨 뜻이겠습니까? 또 저들은 마태가 마리아의 족보가 아니라 요셉의 족보를 기록하고 있다는 점을 들어 가능하면 그리스도의 역사성을 부인해보려고 애씁니다. 그리스도는 요셉과 상관 없이 마리아의 몸에서 나셨으니까 요셉의 족보가 별 도움이 될 수 없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당시 이미 요셉과 마리아가 같은 다윗의 가문에서 났다는 것은 널리 잘 알려진 사실이었기에 요셉의 족보로도 충분했던 것입니다. 아무튼 마리아의 이름이 아무 거리낌 없이 요셉의 족보에 올라 있는 것과, 마리아가 직접 천사로부터 잉태 소식을 들을 때 그 아기가 ‘다윗의 위’를 받을 자라고 표현되고 있는 것과, 이미 그리스도께서 ‘다윗의 자손으로 오실 것과’ 그가 또한 ‘처녀의 몸에서 나실 것’(참조.사7:14)이 예언된 말씀이라는 것 등은 저들 이단들의 알량한 상상력을 부끄럽게 하고도 남습니다. 그러니까 그리스도는 예언대로 처녀의 몸에서 나신 다윗의 자손이라는 것이지요. 그런데도 저들은 또 유치한 트집을 잡습니다. 여자의 몸에서 난 그리스도가 죄가 없으시다면 여자의 씨는 불결하지 않고 남자의 씨만 불결한 것이라고 말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처녀의 몸에서 나신 그리스도께서 아무 죄가 없으시다고 하는 것은 남자와 동침하지 않고 구별된 방법으로 나셨다는 사실뿐 아니라, 거룩한 성령의 능력으로 아담의 타락 이전처럼 순결하고 오염없이 생산 되었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이 항상 그리스도의 순결함을 강조할 때 그것은 그의 신성이 아니라 인간성에 대한 말씀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요17:19). 하나님에 대해서는 순결을 말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지요. 저들은 또 하나님의 말씀이 육신이 되셨다면 하나님이 땅의 몸이라는 좁은 감옥에 갇히고 만 것이라고 비아냥거립니다. 얼굴에 철판을 깔지 않고서는 할 수 없는 말입니다. 그리스도는 단 한 순간도 하나님이시기를 멈춘 적이 없으십니다. 스스로 처녀의 태 중에 계시며, 이 땅에 머무시며, 십자가에 달리시는 동시에 또한 영원 전부터 그러신 것같이 온 우주에 충만하셨습니다. 온 우주에 충만하신 만물의 창조주이시면서도 피조물의 몸을 입으신 것은 오직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리스도는 스스로 ‘거지가 된 왕자’이십니다. 하늘 보좌를 버리시고 낮은 종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다는 것이지요. 그리스도께서 사람의 몸으로 우리에게 오신 것을 부인하는 자마다 적그리스도입니다. 사실 그들은 모두 물질과 육은 악하게 보고 영은 거룩하게 보는 영지주의의 이원론을 따르는 제자들입니다. 자기들의 그 거짓된 철학에 성경의 진리를 뜯어 맞추느라고 그렇게 헛되이 수고한 것이지요. 알고 보면 불쌍한 자들입니다. 성경은 예수님에 대한 분명한 두 가지 진리를 증거합니다. 첫째,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참 사람이시라는 것을 증거합니다. 아기로 태어나시고, 수십 년 동안 사람들과 함께 어울려 사시고, 배 고파 하시고, 잠을 자시고, 울기도 하시고, 아파 하시고, 십자가에서 죽임 당하시는 것들이지요. 그리도 둘째,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참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증거하십니다. 이 사실 또한 열심히 증거 하십니다. 아기로 태어나셔도 남자를 모르는 처녀의 몸에서 성령의 능력으로 태어 나시고, 물 위를 걸으시고, 죽은 자를 살리시고, 수많은 기적을 행하시고, 결국엔 죽임 당하신 지 삼일 만에 부활하십니다. 다시 살아나신 것입니다. 사람은 죽었다가 스스로 다시 살아나지 못합니다. 세상에 그렇게 한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 석가모니가 그랬습니까? 예수님의 이름을 팔아 자기가 조금 더 큰 선지자라고 했던 이슬람의 마호멧이 그랬습니까? 공자가 그랬습니까? 소크라테스가 그랬습니까? 아무도 그렇게 못했습니다. 죽었다 살아난 것은 그만두고, 성경에 예수님 행하신 기적들의 100분지 1이라도 흉내 낸 사람이 없습니다. 성경에 가득 기록된 기적들은 예수님이 사람으로 계시는 동안에도 여전히 하나님이셨다는 것을 증거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인간의 머리로 도저히 그런 진리들을 믿을 수 없으니까 멋대로 해석합니다. ‘성경에 기록된 수많은 기적들은 실제로 있었던 일이 아니라, 당시 기독교인들이 예수님을 폼 나는 교주로 만들기 위해서 꾸며낸 이야기이다.’ 혹은 ‘그 모든 기적들은 어떤 사건을 사실적으로 기록하려는 것이 아니라, 어떤 교리나 교훈을 그 속에 담기 위해 임시로 만든 그릇과 같은 것들이다. 그러니 너무 기적 자체에 신경 쓰지 말고 그 기적을 통해 가르치려는 교훈이 무엇이냐에 집중해라. 교훈만 배우면 된다. 기적은 사실이 아니다.’라는 것이지요. 그러다가 어떤 이단들은 한 걸음 더 나갔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도 진짜 있었던 인물이 아니다. 슈퍼맨, 스파이더맨, 베트멘처럼 사람들이 만든 영웅일뿐이다. 성경은 예수라는 가공의 주인공을 통해 꾸며낸 이야기와 교훈들인데 그 소설 같은 이야기를 통해 전달하려는 교훈을 배우면 된다.’라고 말입니다. 참으로 불쌍한 사람들입니다.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믿지 않는 사람들은 모두 그 말에 감동받고 옳소---합니다만, 여러분은 속지 마십시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잠시 거지가 되었던 왕자이신, 세상에 오셨던 참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입니다. 이 믿음을 갖고 살면 반드시 성경대로 하나님이 여러분과 함께 하십니다.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가 저와 여러분의 것입니다. 우리와 똑같은 몸으로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신 예수님의 부활도 우리의 것입니다. 그 부활하신 몸으로 오르신 하늘 나라도 우리의 것입니다. 예수님의 아버지 하나님이 바로 저와 여러분의 아버지 하나님이십니다. 거지 옷을 입었지만 왕자인 줄을 알아보는 믿음의 눈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십시오. 그리고 성경의 가르침에 순종하십시오. 그러다가 모두 천국에 들어가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을 누리고 상을 받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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