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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강요 3부 2장 : 만능 카드 임병욱 목사 2024-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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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히브리서11:1-3절 개역개정

1.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2.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

3.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성경본문] 히브리서11:32-40절 개역개정

32. 내가 무슨 말을 더 하리요 기드온, 바락, 삼손, 입다, 다윗 및 사무엘과 선지자들의 일을 말하려면 내게 시간이 부족하리로다

33. 그들은 믿음으로 나라들을 이기기도 하며 의를 행하기도 하며 약속을 받기도 하며 사자들의 입을 막기도 하며

34. 불의 세력을 멸하기도 하며 칼날을 피하기도 하며 연약한 가운데서 강하게 되기도 하며 전쟁에 용감하게 되어 이방 사람들의 진을 물리치기도 하며

35. 여자들은 자기의 죽은 자들을 부활로 받아들이기도 하며 또 어떤 이들은 더 좋은 부활을 얻고자 하여 심한 고문을 받되 구차히 풀려나기를 원하지 아니하였으며

36. 또 어떤 이들은 조롱과 채찍질뿐 아니라 결박과 옥에 갇히는 시련도 받았으며

37. 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과 시험과 칼로 죽임을 당하고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유리하여 궁핍과 환난과 학대를 받았으니

38.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느니라) 그들이 광야와 산과 동굴과 토굴에 유리하였느니라

39. 이 사람들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증거를 받았으나 약속된 것을 받지 못하였으니

40. 이는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더 좋은 것을 예비하셨은즉 우리가 아니면 그들로 온전함을 이루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2024년 8월 2일 금요일

오늘은 32장입니다. 믿음의 정의와 속성, 혹은 본질에 대한 내용이지요. 믿음이란 무엇인지, 그 믿음이 어떻게 나타나며, 신자들의 삶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 만능 카드라는 제목으로 살펴봅니다.

요즘은 카드의 시대입니다. 이제 신용카드를 넘어서 단 한 장의 카드로 신분도 확인하고, 집도 드나들고, 물건도 사고, 통신도 하고, 비행기도 타는 시대가 올 것입니다. 한 마디로 만능 카드의 시대가 오는 것이지요. 그것 한 장만 있으면 이 세상에서는 그야말로 못하는 게 없는 시대가 올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 세상을 사는 동안 우리가 겪는 모든 시련과 환난과 역경을 이기게 해주고, 염려와 근심과 걱정, 불안을 이기게 해 주고, 기도하는 것을 응답받고, 늘 기쁨과 소망으로 충만한 삶을 살게 해 주고,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해 주는 카드가 있다면 어떨까요? 그런 만능 카드 한 장만 있으면 삶의 짐을 지고 염려와 걱정하며 사는 삶에 얼마나 큰 행복과 위로를 받겠습니까?

믿음이 바로 만능 카드입니다. 믿음은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그리스도에게 맡기신 모든 은혜를 받아 누릴 수 있는 유일하고도 충분한 수단이라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나라 백성이 되는 순간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만능 카드를 발행하시고, 성령을 통해 우리에게 전달하십니다. 그리고 그 카드는 말씀이라는 재료로 만들어지고, 항상 소망으로 재충전 되는 것으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늘의 각양 좋은 은사들을 마음껏 누릴 수 있는 엄청난 것입니다. 그래서 그 카드는 가짜도 많이 있습니다. 가짜 믿음이지요. 한마디로 가짜 만능카드가 세상에 나돌아 다닌다는 말입니다. 유사품이지요. 조심해야 합니다. 그렇기에 가짜 믿음에 속지 말아야 합니다. 어떤 유사품이 있을까요?

우선 가장 대표적인 유사품은 로마 교회의 맹신 카드입니다. 그들은 이렇게 주장합니다. ‘우리 죄인들은 너무 어두워져 아무 것도 이해 할 수가 없다. 그러니 우선 그 무지를 인정하라. 그런 다음에 교회를 믿어라. 여기서부터 믿음이 출발한다.’ 믿음의 근거가 곧 무지가 되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들은 겸손을 가장한 무지를 믿음이라고 칭찬합니다. 이 가짜 카드에는 말씀대신 교회라는 딱지가 붙어 있습니다. 교회의 권위와 판단에 무조건 찬성하고 따르기만 하면 좋은 신자가 된다는 것이지요. 편안한 길이긴 하지만 바른 길은 아닙니다. 참 믿음은 교회를 존경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을 통해 오직 말씀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확실히 아는 것입니다(17:3; 10:17). 물론 어떤 맹신은 참 믿음의 준비 상태가 되기도 합니다. 복음의 교훈은 전혀 모르면서 먼저 기적만 보고 그리스도를 믿은 경우이지요. 그러나 거기에도 결국 배우려는 열정을 따라오고, 곧 바른 교훈을 받아 참 믿음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4:42, 50,53).

다음으로는 형식적인 믿음이 있습니다. 겉으로 볼 땐 참 믿음 같아 보이는 것이지요. 예컨대 참 믿음이 없어도 성경에 감동을 받고 아멘하고, 열심히 교회에 다니며 성가대 교사 집사로 봉사도 합니다. 그러나 속으로는 하나님을 사랑하지도 경외하지도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십자가를 사랑하지 않습니다. 단지 자기 신념에 비추어 볼 때 기독교가 가장 탁월하기에 열심히 교회 다니고, 성경의 가르침들에 옳다고 찬동하고, 잠시 열정적으로 복음에 헌신하는 것입니다. 그런 상태에서는 구원의 말씀들을 진실하게 믿을 수는 없습니다. 또 단지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을 비난하지 않는다고 불경건하지 않다고 할 수도 없습니다. 마술사 시몬의 경우처럼 그들의 마음 속에는 믿음의 산 뿌리가 박힌 적이 없습니다(8:18; 8:6-7,13). 자신도 속아 넘어가는 감쪽 같은 연극일 뿐 이지요. 한마디로 속은 다른데 겉만 비슷한 그리스도인이지요. 사람 눈으로는 잘 구분하지 못합니다. 성경엔 이런 믿음을 그래서 가라지 믿음이라고 했습니다. 알곡과 가라지는 구분이 어렵습니다. 또 그것을 뽑아내려고 하다가는 알곡까지 뽑힙니다. 언제 가라지를 처리합니까? 추수 때 합니다. 추수하는 날 가라지는 모아 불 구덩이에 던지고, 알곡은 주인의 창고에 들인다고 했습니다.

일시적 믿음도 있습니다. 잠시동안 저들은 참 믿음과 어느 정도에서는 거의 같은 감동을 느낍니다. 이런 것을 공통 믿음이라고 부르지요. 자기들 스스로도 진정한 믿음을 가졌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더 이상 진전하지를 않습니다. 성장하지 못합니다.(6:4-6; 8:13). 그리고 항상 혼돈된 상태에서 벗어나지를 못합니다. 실체가 아니라 그림자만 붙들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다가 결국엔 공포와 절망에 빠져 버립니다. 이 역시 가짜 믿음입니다. 예수님은 이런 자들을 믿지 않으셨습니다(2:24-25; 딤전1:5,19). 하나님이 잠시 저들의 마음에 자비를 베푸시고, 은혜의 맛을 보게 하시고, 구원의 빛을 비추신 것이지요. 그러나 잠시 그럴 뿐입니다. 결국엔 버림 받습니다. 물론 그 책임은 자기들에게만 있습니다. 자기의 타락한 본성이 하나님의 은혜를 배반하는 것이지요. 참 믿음을 가진 자들은 계속 믿음의 진보를 보이고 점점 더 그 확신이 풍성해 집니다(4:6; 8:15; 벧전1:23). 하지만 하나님이 심지 않은 믿음은 기도하지 않습니다. 왜요? 기도가 필요 없는 믿음이거든요. 하나님이 심지 않은 믿음은 성경도 안 읽습니다. 왜요? 성경이 필요 없는 믿음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심지 않은 믿음은 자기를 절대 부인하지 않습니다. 자기 때문에 교회에서 싸우고 교회를 버릴지언정, 절대로 십자가를 지지 않습니다. 교회에서 다른 일은 열심히 다 해도 십자가를 지라면 얼굴을 돌립니다. 왜요? 십자가와 상관 없는 믿음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참 믿음은 무엇에 근거할까요? 참 믿음은 오직 말씀에만 근거합니다. 말씀과 믿음의 관계는 태양과 빛의 관계와도 같습니다. 서로 뗄래야 뗄 수 없지요. 믿음이란 만능 카드는 오직 말씀이란 재료로만 만들어진다는 말입니다. 그의 믿음의 관심은 다만 하나님의 본성이 어떠하신가에 있지 않고, 하나님이 우리에 대하여 어떤 분이 되려 하시는가에 있고, 또 하나님의 성실하심과 자비하심을 확신하는 것이고, 하나님의 존재뿐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으로 이런 것들은 오직 말씀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무지에서 출발하는 맹신이 아니라 말씀에 통한 참된 지식과 확신에서 출발하는 것입니다(55:3; 10:17; 20:31; 딤전4:6; 딤후3:14-15). 참 믿음은 이렇게 말씀으로만 형성되며, 또한 유지되고 증진됩니다. 말씀을 떠난 믿음은 결국 넘어 집니다. 말씀을 제거하면 믿음은 조금도 남지 않습니다.

참 믿음은 그리스도 안에서 은혜를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 때문에 생깁니다. 아마 우리가 성경을 읽다가 진노와 징벌만을 보게 된다면 모두 다 도망부터 가려고 할 것입니다. 하지만 믿음은 하나님을 찾는 것입니다. 우리 죄인들을 용서하시고 구원하여 주시겠다는 자비하신 하나님의 약속을 듣고 감격하여 가슴을 부둥켜 안고 하나님께로 담대히 나가는 것입니다. 원래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해야 할 일을 율법으로 정하셨지요. 그러나 우리 힘으로는 그 율법을 도저히 지킬 수가 없었고, 그래서 우리에게 남은 것은 절망과 두려움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런 비참한 재난에서 구출될 수 있는 단 하나의 길을 약속하셨습니다. 그 길이 바로 그리스도이시지요.(14:6; 17:3). 그러므로 그리스도는 우리의 믿음이 가야 하는 길(목표)이며 동시에 가는 길(수단)입니다(벧전1:21).

그렇다면 이 정도에서 믿음에 대한 정의를 내려 봅니다: ‘믿음은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선하심을 확실하게 아는 지식이며, 이 지식은 그리스도 안에서 값없이 주신 신실하고 소망스런 약속을 근거로 삼은 것인데, 그 지식은 성령을 통해서 우리의 지성에 계시되며 우리의 마음에 도장처럼 새겨진다.’ 다시 말해서 믿음의 만능 카드는 성부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소망스런 약속의 말씀으로 만드시고 성령을 통해 우리 각자에게 전달하시는 것입니다.

이처럼 믿음과 말씀의 관계가 밀접하기 때문에 성경은 여러 곳에서 믿음을 곧 경건에 대한 건전한 교훈과 동일시했습니다(딤전3:9; 4:1,6; 6:20-21; 딤후2:16; 3:8). 또 믿음을 고상한 지식이라고도 했지요(3:8). 그러나 믿음의 지식은 보통 우리 인간이 감각적인 지각으로 알고 있는 사물들에 관한 지식이나 이해와는 전혀 다릅니다. 믿음은 감각을 훨씬 초월하는 것이기 때문에 믿음에 도달하려면 마음 그 자체를 초월해야 합니다. 마음은 믿음에 도달할 때라도 그 느끼는 것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믿을 때에는 그 신념이 확실하기 때문에 어떤 인간적인 것을 자체의 능력으로 지각한 때보다 더 많은 것을 이해 합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지식은 모든 이해력을 훨씬 더 초월하여 넘치는 것입니다(3:18-19). 성경에서 믿음을 지식, 혹은 인식이라고 부르는데 이 인식과 지식은 합리적인 논증에 의해 가르침을 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진리에 의해 강화됩니다(1:17; 벧후2:21;요일3:2; 고후5:6-7). 믿음의 지식은 이해 하는 것이 아니고 확신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바로 이 확신에서 세상을 이기는 담력이 생깁니다(3:12).

그리고 성도들이 갖는 이 확신은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에 대한 확신이지요. 선하신 아버지께서는 오직 사랑을 근거로 우리를 상대하시며, 우리에게 약속하신다는 것을 굳게 믿는 것입니다. 이 확신이 바로 우리 양심에 평화를 줍니다(5:1). 하나님의 심판대를 두려워 하지 않게 해 주고 천국의 기업을 틀림없이 받을 것으로 믿고, 또 자랑하게 해 주는 것입니다(8:38-39). 믿음의 만능 카드에는 이렇게 천국이 상급으로 입력되어 있습니다. 놀랄 일이지요.

그런데 성도들의 그 위대한 참 믿음도 세상 사는 동안 마구 흔들립니다. 성도들의 믿음도 흔들릴 때가 있다는 말이지요. 정말 놀랄 일이지요. 세상에 있는 믿음은 의심이 섞이지 않고 불안의 습격을 받지 않는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성경에 다윗보다 그 믿음이 뛰어나거나 기억에 남는 예가 거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의 어떤 고백들은 우리를 깜짝 놀라게 합니다. 그는 너무나 낙심했고 불안해 했습니다(42:5,11; 43:5). 심지어 하나님의 신실하신 사랑을 의심하기도 했습니다(31:22; 77:9). 그렇다고 다윗이 믿음이 없는 사람이었을까요? 그렇지 않지요. 마찬가지입니다. 성도들의 믿음 역시 수많은 시험으로 공격을 받습니다. 어떨 때는 크게 흔들리고 갈등하기도 합니다. 특히 양심이 죄의 짐에 눌릴 때에는 낙심하기도 하고, 불평하기도 하며, 자책하며 신음하고, 지독한 의심과 공포에 사로잡히기도 합니다. 항상 성도들의 속에 숨어 있는 불신앙은 그런 것들을 무기로 해서 성도들의 신앙의 넘어뜨리려고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미워하시고 대적하시고 우리를 도와 주시지 않을 것이라고 믿게 하려는 것이지요. 절대 하나님의 사랑을 믿지 못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도들의 갈등과 흔들림과 두려움은 결국 다 진압됩니다. 곧 평정을 되찾고 오히려 더 견고하고 빛나는 믿음에로 전진합니다. 성도들이 틈틈히 느끼는 두렵고 떨림’(2:12-13)은 성도들을 아주 넘어지게 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온전한 구원을 이루어 나가게 해줍니다. 성도들은 성경에 기록된 불경건한 자들이 받은 징벌을 보면서 두려워하고 떨게 되는데, 이런 두려움은 원수나 종의 두려움이 아니라 자식이 아버지에 대해 갖는 것입니다. 아버지를 노엽게 하는 것을 지옥에 가는 것보다 더 싫어 하고 두려워 하는 것이지요. 그리고 이 두려움은 성도들의 기를 아주 꺾어 버리는 것이 아니라 더욱 조심하게 하고, 더욱 겸손하게 하고, 더욱 위대하신 하나님을 바라보게 해주는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성도들은 모든 전투에서 무사히 돌아오며 새 힘을 얻어 곧 다시 전쟁터로 나아갑니다. 일천번 공격을 당하더라도 결국 이기고 전 세상을 정복할 것입니다(요일5:4).

이처럼 성도들의 참 믿음은 끝까지 가며 충분한 효과를 누립니다. 여러 가지 공격들 앞에서 사정 없이 흔들릴 때가 있기는 하지만 그러나 절대로 아주 좌절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럴수록 더욱 견고해 지며 더욱 효과 있어 집니다. 다음 몇 종류의 보호자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첫째는 약속의 말씀입니다. 말씀은 약해지고 병든 믿음에 더할 나위 없는 보약입니다(119:43; 6:16). 성도들은 약하고 흔들릴 때마다 믿음의 말씀’(10:8)을 먹으며 새롭게 일어납니다. 말씀은 변치 않는 하나님의 사랑을 약속해주기 때문입니다(36:5; 86:5; 100:5; 143:5). 둘째는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리스도는 우리 곁에 계신 분이 아니라 우리 안에, 우리와 하나로 계십니다(17:23; 2:12-13; 고전3:16). 내 믿음을 곧 그리스도의 믿음이라 할 수 있다면 걱정할 일이 없지 않겠습니까? 셋째 성령님이십니다. 말씀은 오직 성령님을 통해서만 우리의 믿음에 효력을 나타내십니다(딤후1:14; 3:2;6:65;14:17). 그래서 우리는 오직 성령님을 통해서만 그리스도에게로 나갈 수 있습니다(16:13; 고전2:10,16; 1:13-14; 고후5:5; 요일3:24; 4:13). 넷째는 소망입니다. 믿음이 참 사랑을 일으키는 것처럼 참 믿음은 참 소망을 생산합니다. 믿음은 하나님과 그의 약속들을 믿는 것이며, 소망은 그 믿는 것을 기대하는 것입니다(2:3; 8:17; 벧후3:8). 예를 들어 믿음은 우리가 영생을 받았다고 믿는 것이며, 소망은 그 영생이 언젠가는 우리에게 나타나리라고 기대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은 소망을 낳고 소망은 믿음에 힘을 줍니다. 소망은 믿음을 서두르지 않게 해주고 회복시키고 생기를 주고 갱신 시켜줍니다. 결국 믿음은 소망의 손을 붙잡고 천국에 들어 갑니다. 믿음이란 만능 카드는 늘 소망으로 재 충전 된다는 말씀이지요.

믿음을 만능 카드라고 하는 것은 아무 것도 모르면서도 믿고 순종할 수 있는 힘이 있기 때문이 아닙니다. 오히려 믿음은 사람으로서는 도저히 알 수 없고 이해할 수 없는 성경의 가르침들을 알고 이해할 수 있게 해주기 때문에 만능카드라고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인도철학이나 불교철학이 성경과 비슷하다고 말 합니다. 언뜻 읽으면 비슷한 내용들이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성경은 하나님의 권세와 지혜로 충만합니다. 인간에서 출발해서 인간으로 끝나는 그런 경전들이랑은 차원이 다릅니다. 공통점들이 있다고 해서 비슷한 책으로 보는 것은 원숭이와 사람이 공통점이 있다고 해서 같은 동물이라고 보는 것과 똑 같습니다. 성경만이 갖고 있는 탁월성이 여러 가지이지만 그 중에 하나만 고른다고 하면 예언과 성취라는 구조입니다. 성경은 먼저 예언하고 그 예언이 성취되고... 계속 그런 구조로 모든 책들이 엮어져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 66권은 서로 얼굴도 못보고 이름도 못 들은 저자들 40여명이 1600여년 동안 쓴 책이지만 마치 한 사람이 딱 앉아서 한 시간 안에 써 내려간 책 같습니다. 읽어보면 그런 느낌이 듭니다. 왜요? 예언과 성취라는 신적인 구조로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성령이 주시는 믿음이란 눈이 없으면 성경을 읽으면서도 그 구조가 눈에 안 들어 옵니다. 읽어도 마음에 안 들어 옵니다. 마치 술에 취하고 마취된 사람처럼 그 구조를 못 알아 봅니다. 믿음은 그것을 알아보게 하는 능력이 있기 때문에 만능 카드라고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믿음은 물론 처음엔 무지에서 출발할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이 누구신지, 죄가 무엇인지 전혀 모르면서도 그저 교회 안에 일어나는 기적이나 아름다운 사건을 보고 예수님을 믿기로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무지한 믿음은 말씀을 통한 성령의 역사로 이내 곧 열정을 갖게되고, 말씀을 배워 금방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참 믿음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그러므로 예수 안에 있는 참 믿음을 가진 자들은 안전합니다. 이 세상에서 어떤 시련과 역경과 환난을 당해도 이길 수 있습니다.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성령을 통해 말씀으로 만들어 여러분에게 주신 믿음 카드는 여러분을 평생 지켜 줄 것입니다. 세상 사는 동안 하나님의 사랑 받는 자녀로 살다가 결국 구원 받아 천국에 가서 영생을 누리게 해 줄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만 살리라는 말씀처럼 하나님이 주신 그 믿음으로만 사셔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시는 모든 혜택을 누리시며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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