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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강요 3부 5장 : 위조품 임병욱 목사 2024-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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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히브리서10:12-14절 개역개정

12. 오직 그리스도는 죄를 위하여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사

13. 그 후에 자기 원수들을 자기 발등상이 되게 하실 때까지 기다리시나니

14. 그가 거룩하게 된 자들을 한 번의 제사로 영원히 온전하게 하셨느니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2024년 8월 7일 수요일

 

오늘은 35장입니다. 로마 카톨릭의 엉터리 회개론인 보속설이 낳은 면죄부와 연옥에 대한 이야기이지요. 그것을 위조품이라는 제목으로 공부해 봅니다.

위조 지폐, 위조 도자기, 위조 그림, 위조 신분증 등등 우리 주변에는 위조품들이 나돌아 다니고 있습니다. 속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위조품은 남을 등쳐 먹을 의도로 만든 꼭 진짜 같은 가짜를 말하지요. 많은 수고나 엄청난 돈을 들여 위조품을 산 사람일수록 그것이 위조품이란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 동안 들인 공이 너무 아깝고 억울해 차마 인정할 수가 없는 것이지요. 로마 교회는 가짜 열쇠들에 이어 또 다시 어마어마한 위조품들을 만들어 냈습니다. ‘가짜 열쇠들을 보충하려는 것이었지요. 그것이 바로 면죄부와 연옥입니다.

먼저 면죄부에 대해서 살펴봅니다. 천주교가 만든 가짜 열쇠는 고해성사보속의 교리였습니다. 그 중 보속의 교리는 자기나 성자, 순교자들이 이룬 선행의 공로로 자기 혹은 다른 사람의 죄책뿐 아니라 죄에 대한 벌까지 다 용서 받을 수 있다는 교리입니다. 이 보속의 교리에서 또 면죄부(indulgences)란 자식이 태어납니다. 자기 힘으로 보속을 이루기가 힘겨울 때에는 다른 사람의 공로라도 빌려와야 되는데 면죄부가 바로 그 일을 해준다는 것이지요. 면죄부로 빌려 오는 다른 사람의 공로는 그리스도와 거룩한 성도들과 순교자들의 공로를 말합니다. 그 공로들이 바로 교회의 보고인데 이 창고의 열쇠를 맡은 로마 교회의 주교들이 그 위대한 혜택의 분배를 주관한다는 것입니다. 직접 또는 위임을 통해서 그렇게 한다고 합니다. 완전한 면죄부(대사大赦)와 수년 간의 면죄부는 교황이 발부하고, 100일 간의 것은 추기경이, 그리고 40일간의 것은 주교들이 발부한다고 말합니다(아퀴나스,Summa Theol. 3).

그러나 이런 주장은 악마적 간계에 불과합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그리스도의 생명에서 그리스도인들을 떼어내어 진정한 믿음의 길에서 벗어나게 하려는 것이지요. 세상 죄를 씻어 내면서 그리스도의 피가 고갈되기라도 한단 말입니까? 죄를 용서하는 일에 그리스도의 피로 부족하단 말입니까? 또 저들은 그리스도의 피와 순교자들의 피를 섞었습니다. 게다가 그 섞인 피가 교회의 보고가 된다는 것이지요. 이렇게 그리스도의 피를 더럽힐 수가 있단 말입니까? 복음은 우리가 다 예수의 이름을 힘 입어 죄 사람을 얻는다고 가르칩니다(10:43; 요일1:7). 그러나 면죄부는 베드로와 바울과 순교자들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받는다고 주장합니다. 또 복음은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된다고 가르칩니다(고후5:21; 고전1:2-3). 그러나 면죄부는 우리에게 순교자들의 의와, 피가 필요하다고 주장합니다. 복음은 그리스도의 피로 교회를 샀다고 증거하지만(20:28), 면죄부는 순교자들의 피가 교회를 산 값이 되었다고 말합니다. 또 복음은 그리스도 한 분의 제물로 거룩하게 된 자들을 영원히 온전케 하셨다고 말씀합니다만(10:14;7:14), 면죄부는 순교자들 없이 우리의 거룩은 완성될 수 없다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복음과 면죄부 둘 중 하나는 틀린 것이 분명 하겠지요? 면죄부 교리는 그리스도의 피를 더럽히는 파렴치한 창작물입니다. 한마디로 면죄부는 위조된 복음입니다.

면죄부 주장자들은 성경을 제멋대로 해석합니다. 바울은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육체에 채운다고 고백한 적이 있습니다(1:24).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몸으로 한번 당하신 고난을 지금은 그의 지체들을 통해서 매일 당하신다는 뜻이지요. , 이 말은 우리가 교회를 위하여 받는 고통을 그리스도께서 곧 자신의 고통으로 인정하신다는 위대한 믿음의 고백이기도 합니다. 우리에게 그것은 더할 나위 없는 영광이지요.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은 교회의 구속이나 화해나 보속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교회의 건설과 부흥과 확장을 위한 것이지요.

그런데 면죄부를 만들어내는 사람들은 여기서 바울이 나중에 교회를 보속하기 위한 공로를 자기 몸에 채웠다고 주장합니다. 위조품 치고는 너무 턱없어 보이는 거짓말이지요? 어거스틴의 말처럼 사도들은 교회를 구속하기 위해 값을 치룬 것이 아니라 그 치뤄진 사실을 전파할 뿐입니다. 사도들은 그리스도의 부족한 공로를 채우자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처럼 자기도 교회를 위해 고난을 당한다고 고백한 것이지요. 사도들이 택함 받은 자들을 구원하기 위해 고난을 당한다는 것은 그 값을 치른다는 것이 아니라 이미 충분한 값을 치르신 그리스도를 증거한다는 뜻입니다(딤후2:10; 고후1:6; 1:25; 15:19 ; 고전1:17,23; 고후5:18-21등 참조).

로마의 주교 레오(440-461)도 팔레스틴 교회에 보내는 글에서 아주 분명한 말로 면죄부를 공격합니다. ‘성도들의 죽음을 주께서는 귀중하게 보시지만(116:15), 그러나 순교자의 죽음이 이 세상을 위한 화해 제물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들은 각자 자기의 죽음을 죽은 것이지 그 죽음이 다른 사람의 빚을 대신 치르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에게는 오직 주 그리스도 한 분이 계시며, 그 안에서 모든 사람이 십자가에 죽고 매장되고 부활하였습니다.’ 어거스틴도 적절한 말로 경고해줍니다. ‘우리는 형제로서 다른 형제들을 위해 죽을 수 있지만 그런 그 피나 순교자의 피가 죄의 용서를 위한 것은 아닙니다. 그 일은 그리스도께서 이미 우리를 위해 다 하셨습니다. 우리가 주께로부터 받은 은혜는 그를 모방하라는 것이 아니고 그 은혜를 기뻐하라는 것입니다.’

교황의 지시를 받아 면죄부를 갖고 다니면서 팔았던 신부가 있습니다. 그 유명한 테첼이란 신부이지요. 그는 설교를 아주 감동적으로 잘 했습니다. 그가 어떤 동네에 도착하면 그 지역 교회 대표가 동네 입구에서 그를 맞아 환영합니다. 그리고 그를 모시고 성당까지 행렬을 합니다. 마치 옛날에 이스라엘이 법궤를 모시고 행진했던 것처럼, 면죄 부적이 담긴 통을 받들어 모시고 성당까지 행진을 합니다. 그리고 테첼 같은 자가 설교합니다. 그러면 성도들이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면죄부를 삽니다. ‘여러분이 면죄부를 사는 동전이 통 바닥에 찰랑하고 떨어지는 순간 연옥에서 고통 받던 여러분의 아버님이 천국으로 구원 받습니다!’ ‘아멘!’ 테첼의 설교를 듣고 깜짝 놀란 사람이 바로 마틴 루터입니다. 그는 당장에 95개 항목이나 되는 반박문을 써서 자기가 가르치던 위텐베르그 대학 정문에 붙였습니다. ‘교황은 거짓말 하지마라. 구원은 오직 믿음으로만 받는다!’ 이것이 종교개혁의 시작이었습니다.

다음은 연옥설입니다. 연옥설 역시 면죄부에 이어 또 하나의 고약한 창작물입니다. 연옥에 대해서는 이미 많은 비판들이 있었고, 또 이제 더 이상 그것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 것이 좋을 듯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루터). 그러나 연옥은 많은 모독으로 만들어졌고, 또 매일 새로운 모독으로 지탱되며, 그리고 여러 가지 중대한 죄악을 선동하고 있으므로 도저히 그대로 지나갈 수가 없습니다. 오히려 우리는 목과 폐에서 나오는 큰 목소리로 연옥이야 말로 사탄이 만들어낸 아주 치명적인 거짓말이라고 소리 높여 외쳐야 합니다.

그들은 천국과 지옥의 중간에 연옥이란 가벼운 지옥을 만들어 놓고, 여러 가지 교리들로 꾸며 댔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잘 믿지 못하고 죽은 부모 형제 친구들은 지옥에 간 것이 아니라 연옥에 가 있는 것이라고 위로하고, 그들을 거기에서 천국으로 이사 시킬 방법이 있다고 가르쳤습니다. 여러분 이런 가르침을 성경에서 읽어 본적이 있습니까? 없지요. 하지만 천주교에서는 마카비라는 외경이나 천주교의 오래된 전통들을 들이대며 연옥을 주장합니다. 이탈리아의 유명한 시인 단테가 1307년부터 써서 1321년 죽을 때까지 쓴 대 서서시 신곡때문에 더욱 유명해졌지요. 그 서사시는 지옥편, 연옥편, 천국편 등 세 부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아무리 단테가 신곡에서 연옥편을 썼어도, 하나님이 성경에 써주지 않으셨다면 연옥교리는 위조된 것입니다. 연옥은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수포로 돌아가게 하며, 하나님의 자비를 모욕하며, 우리의 믿음을 뒤집고 부숴버립니다. 연옥설은 죽은 뒤에도 죽은 사람들의 영혼이 죄에 대해 보속을 치른다는 보속 교리에서 나온 것이기에 보속이란 망상이 무너지면 연옥 자체도 송두리째 날아가버립니다. 만약 이미 우리가 강조하고 또 강조한대로 그리스도의 피가 신자들의 죄를 위한 유일한 보속과, 유일한 속죄와, 유일한 정화의 수단이라는 것이 분명하다면 연옥은 그리스도에 대한 무서운 모독에 불과한 것이라고 말 할 수 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그런데도 저들은 엉터리 성경 해석으로 연옥을 만들어 냅니다. 저 위조품 생산 공장 사람들은 원래 자기들 습관대로 성경을 망측하게 해석하면서 자기들 주장을 굽히려 들지 않습니다. 우선 그들은 복음서에서 자기들 편을 찾아 냅니다. ‘성령을 거역하면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도 사하심을 얻지 못하리라.’(12:32). 이 말씀을 해석하면서 그들은 이 말씀이 오는 세상에 용서 받을 죄가 있다는 사실을 암시하고 있다고 말합니다(Lombard,Sentences 4-11.1). 그러나 아무 선입관 없이 이 말씀을 본다면 어떻게 거기서 연옥에 대한 가르침을 찾아낼 수 있겠습니까? 불가능한 일이지요. 오히려 그 말씀은 성령을 거역하는 죄의 죄책이 얼마나 중한 지를 강조하는 것입니다. 또 저들은 빌립보서(2:10)를 예로 듭니다. ‘하늘에 있는 자들이나 땅 아래 있는 자들이 예수의 이름에 무릎을 꿇게 될 것이라는 바울 사도의 말에서 땅 아래 있는 자들이 바로 연옥에 있는 영혼들이라는 것이지요. 그러나 여기서 사도는 단순히 모든 지배권을 얻으신 그리스도께 모든 피조물이 복종케 되었다는 것을 말합니다(5:13; 19:1 참조). 오히려 그 땅 아래 있는 자들연옥에 있는 자들이라기 보다는 장차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끌려 나와 공포와 전율로 심판자를 인정할 마귀들을 의미한다고 보는 것이 더 정당할 것입니다(참조,14:10-11; 45:23).

그리고 저들이 마카비 가문의 역사에서 인용하는 것(마카비후서12:43)은 대답할 가치조차 없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이 책을 성경의 정경으로 인정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저들은 어거스틴이 그 책을 정경으로 인정했다고 말하지만 사실 어거스틴은 신중히 읽는다면 도움이 될 것이라는 정도로 인정하고 있습니다(Against Gaudentius 1-31.38). 그리고 제롬은 아무 주저함이 없이 마카비서는 교리를 증명하는 데는 무가치하다고 그 권위를 무시합니다(Preface to the Book of Samuel and Malachi). 또 무엇보다도 마카비서는 저자 자신이 끝에 가서 자기가 잘못 말한 것이 있다면 용서해달라고 간청하고 있습니다(마카비후서15:39). 이런 글을 성령이 주신 말씀이라고 확신할 수 있겠습니까?

저 거짓말장이들은 바울의 다음 말을 굉장히 의지합니다. 만일 누구든지 금이나 은이나..... 이 터 위에 세우면 각각 공력이 나타날 터인데 그 날이 공력을 밝히리니..... 만일 누구든지 공력이 불타면 해를 받으리니 그러나 자기는 구원을 얻되 불 가운데서 얻은 것 같으리라.”(고전3:12-13). 그들은 이 불이 곧 연옥의 불이 아니냐고 의기양양하게 주장합니다. 우리는 모두 연옥의 불로 순결하게 되어 하늘 나라에 들어가게 된다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사도들과 순교자들도 다 이 연옥의 불을 통과해야 한다는 것입니까? 아마 저들은 기겁을 하고 손을 휘저을 것입니다. 교인들에게 무한한 혜택을 준다는 순교자 등이 그렇게 해야 한다고 말할 수는 없겠으니까요. 그러나 바울 사도는 일부가 아니라 모든 사람의 업적이 시험을 받으리라고 천명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바울은 그들이 어떤 행위 때문에 불을 통과해야 된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만일 그들이 지극히 성실하게 교회를 건설했다면 그 업적이 불로 시험을 받은 후에 상을 받을 것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성령의 불이 사람의 두뇌에서 나온 교리들(나무와 풀과 짚)을 태워 버리고 오직 주의 진리(, , 보석)들만이 영광스럽게 빛나게 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여기서 겨우 구원 받는 사람들은 합당한 기초 위에, 그러나 부적당한 재료로 교회를 세운 사람들입니다. , 신앙의 중요하고 필요한 교리에서는 떠나지 않지만, 덜 중요하고 덜 위험한 교리에서는 곁길에 들어선 사람들이지요.

다시 저 위조범들은 초대교회에 호소합니다. 연옥설은 교회가 옛날부터 지켜온 오랜 관습이라는 것이지요(아퀴나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이나 계시나 전례나 어느 것 하나도 그들의 말을 지지해주지 않습니다. 물론 이교도들 사이에서는 죽은 자들을 위한 의식이 있었고, 매년 그들의 영혼을 위해서 정결케 하는 의식이 있었습니다. 이방인들을 속였던 사탄의 그런 술책들을 교회가 마치 경쟁이라도 하듯 받아 들인 것이지요. 그리고 일단 그렇게 교회 안으로 들어 온 그 거짓말은 그 뒤로 계속 더 강화되고 추가 되고 발전해 온 것입니다. 물론 옛 교부들도 오류에 휩쓸렸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어거스틴을 비롯한 많은 교부들은 죽은 자들을 위한 기도에 대해 많이 주저했습니다. 그리고 오히려 너무나 많은 의혹을 보임으로써 죽은 자들을 위한 열심에 찬 물을 끼얹습니다(어거스틴, The Care to be Taken for the Dead). 그저, 그런 습관은 오래된 것이니 멸시하지 말라는 정도입니다. 도리어 어거스틴도 분명히 밝혀 준 것처럼, 모든 신자는 예언자나 순교자나 사도와 마찬가지로 죽은 후에 즉시 복된 휴식을 얻는다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허락하시고 결정하신 것들만 기도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한번도 허락하신 적이 없는 죽은 자들을 위한 기도는 하나님께 대한 기도를 더럽히는 일입니다. 위조범들은 세상 사람들의 무지함과 두려움을 이용하여 비열한 장사를 하며 그 더러운 욕심을 채우는 것입니다(21:13; 19:46).

위조범의 목적은 분명합니다. 가짜를 진짜처럼 만들어 무지한 사람들을 속이고 잇속을 챙기려는 것이지요. 로마 교회의 회개론은 위조된 것입니다. 고백성사와 보속설, 그리고 면죄부와 연옥에 대한 거짓말들이 바로 그 것들이지요. 세상엔 아직 위조품을 사들여 놓고, 단지 그 치른 비싼 값 때문에 자랑스러워 하는 멍청이들이 많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위조품은 장난감이 아니라 속이는 것이고 해치는 것이고 독이 든 주스처럼 악한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이 위조품으로 구원해 내지 않으시고 진품 명품으로 구원하셨다는 사실을 깨닫고 감격하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구원과 용서는 오직 예수님의 피로 충분합니다. 면죄부는 위조된 부적입니다. 그리고 천국 아니면 지옥이지, 죽은 다음에 다시 구원 받을 기회가 있거나, 이 땅에서 면죄부를 산다고 지옥 가 있는 영혼이 천국으로 이사 갈 수 없습니다.

예수의 보혈만 의지하고 찬송하고, 세상에 살아 있는 동안 믿음으로 하나님의 일에 열심히 헌신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죽은 자들에 대해서는 이미 우리의 손을 떠난 것입니다. 아무 말 할 필요 없습니다. 하나님께 맡기고 우린 우리 곁에 살아 있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고 섬기고 봉사하고 사랑합시다.

오늘도 위조품이 아닌 진품 명품으로 구원받음은 감사 감격하며, 다른 사람에게도 열심히 그리스도의 보혈을 자랑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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