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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강요 3부 6장 : 설계와 건축 | 임병욱 목사 | 2024-11-07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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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마태복음7:24-25절 개역개정24.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25.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추를 반석 위에 놓은 까닭이요
오늘은 3부 6장입니다. 6-10장의 서론적인 내용으로 그리스도인의 생활에 대한 이야기이지요. 그것을 ‘설계와 건축’이라는 제목으로 공부해 봅니다. 건물을 지을 때 설계도 없이 짓는 건물이 있을까요? 혹시 있다면 그 건물은 안전할까요? 건축의 기초는 설계도입니다. 모든 건축은 설계에서 출발하고 설계에 의해 진행되고 설계에 의해 마무리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건축의 성패는 이미 설계에서 결정 난다고 볼 수도 있지요. 그렇기에 건축에 있어서 설계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 것을 강권합니다. 그래서 성도는 ‘그리스도인의 삶’이라는 독특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삶은 이미 건강하고, 아름답고, 행복한 삶이 되도록 완벽하게 설계되어 있습니다. 만일 우리의 삶이 풍성하고 행복하지 못하다면 아마 대부분은 그 설계도를 무시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의 삶에 대한 설계도는 무엇일까요? 그리스도인의 삶에 대한 설계도는 성경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중생시키신 목적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우리로 하여금 순종을 통해 하나님의 의와 일치를 이루는 삶이 되게 하려는 것이고, 또 그렇게 함으로써 이미 우리가 받은 하나님 자녀의 자격을 더욱 확고하게 하려는 데 있습니다(갈4:5; 벧후1:10). 하나님의 말씀에는 우리 안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 시킬 수 있는 신선한 힘이 충분히 들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얼마나 어리석고 악합니까? 그렇게 중생한 후에도 열정만 있고 무지한 건축가와 같습니다. 의욕도 있고 힘도 있지만 좋은 설계도가 없는 건축가이지요. 우리는 연약하여서 아무리 진실로 회개하고 하나님을 향한 열성을 갖게 되었다 하더라도 금방 그릇된 길로 가기가 쉽습니다. 그래서 중생한 그리스도인들은 완전한 설계도를 따라 하루하루 조심스럽게 자기 삶을 건축해 나가야 합니다. 그 완전한 설계도가 바로 성경 말씀입니다. 세상 철학자들도 사람이 바르고 아름다운 삶을 살기 위해 필요한 덕목들이 무엇인지에 대해 부지런히 이야기해왔습니다. 무엇이 옳고 무엇이 아름답고, 이럴 때는 이렇게, 저럴 때는 저렇게 등등 이루 헤아릴 수도 없이 많은 말들을 했습니다. 마치 자기의 머리 좋은 것을 자랑이라도 하려는 듯, 또 말을 많이 안하면 단 한가지도 가르칠 수 없다는 듯이 앞다투어 많은 말을 했습니다. 그러나 인생이 어디서 왔는지, 어디로 가는지, 왜 가야 하는지, 어떻게 가야 하는지, 무엇으로 가야 하는지를 모르는 상태에서 이렇게 살아라, 저렇게 살아라 하는 것은 설계도 없이 집을 짓는 것과 똑 같습니다. 그렇기에 인생에 대한 전체적이고 보편적인 법칙들을 찾아내지 않으면 안 됩니다. 나는 인생에 대한 전체적이고 보편적인 법칙들을 성경에서 찾아 간략하게 정리해 보려고 합니다. 첫째로, 인생의 삶의 동기에 대한 것입니다. 왜 살아야 하는지 하는 문제이지요. 우리가 그리스도인이라면 왜 그리스도인으로의 삶을 살려고 하느냐는 겁니다. 그 집을 왜 지으려고 하느냐, 건축의 동기가 무엇이냐 하는 것이지요. 성경을 자세히 읽어 보면 성경은 다음 두 가지 중요한 내용으로 우리를 격려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타락하여 원래 의에 대한 열정이 전혀 없었던 우리 마음 속에도 하나님의 은혜만 있으면 그 의가 주입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일단 우리가 그렇게 해서 의에 대한 열정을 갖게 되었다면, 속히 일정한 법칙들을 안내자로 삼아 그 열정이 정처 없이 방황하지 않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법칙들은 당연히 성경의 가르침이지요. 이렇게 성경의 안내를 받는 의로운 삶이 바로 그리스도인의 삶이라는 것입니다. 성경이 우리에게 의로운 삶을 요구하고 있는 이유들은 상당히 많습니다. 우선 “하나님이 거룩하시니 너희도 거룩하라”는 것이지요(레19:2; 벧전1:15-16). 우리가 의롭게 살아야 할 동기로서 이보다 더 훌륭한 이유가 또 어디 있겠습니까? 영광 중에 계신 하나님의 가장 분명한 특징 중 하나가 바로 악한 것이나 불결한 것과는 절대 가까이 하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하나님이 우리와 굳게 결합하시고 친밀한 교제를 나누신다는 것이 아닙니까! 어떻게 죄악으로 덮여 누추하기 짝이 없는 우리에게 그런 기적이 일어난 것일까요? 하나님의 거룩이 우리에게 주입된 것이지요. 하나님에게서 나온 거룩의 줄이 우리를 하나님께로 잡아 맨 것입니다. 그러므로 거룩은 우리 그리스도인이 평생 살며 바라볼 최대의 목표입니다(사35:8). 그것이 바로 우리를 구원하신 목적인데 구원 받았으면서도 여전히 세상의 죄악에 잠겨 평생을 부패에 주저 앉아 있다면, 도대체 우리가 무엇 때문에 구원 받은 것이란 말입니까? 또 성경은 주의 백성이라면 마땅히 거룩한 성 예루살렘에 살아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시116:19; 122:2-9). 하나님의 자녀들은 마굿간이나 외양간이나 돼지우리가 아니라 거룩한 하나님의 장막에서 사는 자들이란 말씀이지요(시15:1-2; 24:3-4). 그리고 무엇보다 그리스도인의 삶에 가장 강력한 동기는 그리스도와 그의 구속하심에서 얻어야 합니다. 즉,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삶을 살아야 할 가장 강력한 동기는 바로 그리스도 때문이어야 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은 당연히 그리스도 안에서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이 우리 아버지이심을 알리셨고, 자신의 형상을 우리에게 인치시며, 그리고 우리를 향하신 자신의 뜻이 무엇인지도 나타내셨습니다(요1:12; 고후5:18;히1:3; 요17:8).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인의 삶을 산다는 것은 다름 아니라 하나님이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세우신 중보자 그리스도를 우리 생활에서 본받아 나타내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의 양자로 삼으실 때의 조건은 그것 단 한 가지입니다. 하나님과 우리를 묶어주신 그리스도를 우리 삶에서 날마다, 풍성히 나타내라는 것이지요. 만약 그 일에 실패할 때 우리는 그것을 바로 배신 행위라고 하며, 구주를 배척하는 죄라고 하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가 되어 주셨으니 우리는 마땅히 자녀다운 생활로 그 은혜에 보답해야 된다는 것입니다(말1:6; 엡5:1; 요일3:1). 또 그리스도께서 그 피로 우리를 씻어 정결케 하셨고 세례를 통하여 그 정결을 우리에게 주셨으니 또 다시 타락함으로 우리 자신을 더럽히지 말라는 것입니다(엡5:26;히10:10;고전6:11; 벧전1:15,19). 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신의 몸에 접 붙이셨으니까 그의 지체된 우리 자신을 오점으로 더럽히지 말라는 것입니다(엡5:23-33; 고전6:15; 요15:3-6). 또 우리의 머리이신 그리스도께서 하늘로 오르셨으니 우리도 세속적인 욕망을 버리고 진심으로 하늘을 바라보고 그리워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골3:1이하). 또 성령께서 우리를 성전 삼으셨으므로 최선을 다해 우리의 삶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이 빛나도록 해야지, 추악한 죄악으로 자신을 더럽혀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고전3:16, 6:19; 고후6:16). 또 우리의 영과 몸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고 색도 바라지 않는 하늘의 면류관을 받기로 정해졌으므로(벧전5:4), 우리는 우리의 영과 육을 주의 날까지 흠도 티도 없이 보존하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살전5:23; 빌1:10). 이 얼마나 복되고 아름다운 동기들입니까! 세상 철학자들이 우리에게 도덕을 권할 때는 기껏해야 고상한 삶을 사는 것이 인간 본래의 존엄성이라는 생각을 결코 넘어서지 못합니다. 그러나 성경이 우리에게 제공해주는 동기는 전혀 다릅니다. 이와 같이 우리가 우리 인생을 마땅히 성경의 설계대로 그리스도인의 삶으로 건축해야 되는 이유는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구속하신 하나님의 그 은혜와 사랑 때문입니다. 둘째, 그리스도인의 생활은 혀가 아니라 마음의 문제입니다. 복음은 혀의 교리가 아니라 생명의 교리입니다. 복음의 효력은 혀에 머물며 혀 끝을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마음 속 가장 깊은 곳에 침투하여 그 영혼 안에 머물며 감정을 움직이고 그 인격 전체에 영향을 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복음은 우리에게 철학자들의 충고보다 몇 백배 더 강력한 영향을 주어야 합니다. 철학이나 과학이나 그 밖의 모든 말들은 인간의 오성과 기억력만으로 이해할 수 있지만 복음은 그렇지 않습니다. 복음은 마음으로 받고 영혼 안에 머뭅니다. 그러므로 유창한 말만 있고 그리스도를 닮은 감정도 성품도 삶도 없는 그리스도인은 아직 욕망에 속아 썩어져 가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지 못한 것입니다(엡4:22,24). 물론 육신으로 사는 동안 우리는 그리스도의 성품과 삶을 완벽하게 재현해 낼 수는 없습니다. 누구나 다 항상 부족하고 자주 자주 실패합니다. 그러나 그렇더라도 우리는 그 완전함을 원해야 하고 그것을 목표로 삼고 매일 노력해야 합니다. 우리 스스로 우리의 연약함을 핑계로 어떤 말씀은 따르고 어떤 말씀은 버릴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우리의 바르고 아름답고 풍성한 삶을 위한 설계에 꼭 필요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일단 ‘성실’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예배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 바로 ‘성실’입니다(창17:1; 시41:12. 한글개역 성경에서는 ‘완전’ 혹은 ‘온전’이란 말로 번역되었습니다). ‘성실’이란 마음이 진실하고 단순하다는 것이며, 아무런 간사함이나 가장이 없고, 두 마음을 품지 않은 것을 의미하지요. 올바른 생활은 바로 이 ‘성실’에서 출발하며 바로 이것을 영적인 삶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비록 우리가 육체의 ‘감옥’ 안에 거하는 동안은 아무도 완전할 수 없지만, 그 방향을 바꾸면 안 됩니다. 약하기 짝이 없어 매일 비틀거리고 절름거리며 심지어는 기어 다니더라도 그 방향을 바꿀 수 없습니다. 아주 짧은 거리라도 매일 조금씩 앞으로 나가야 합니다. 설계도를 벗어나면 안 된다는 말이지요. 벽돌 한 장이라도 설계도에서 벗어나면 부실공사입니다. 부족하지만, 느리더라도, 원하는 데까지 미치지 못했더라도 어제보다 나으면 잘 한 것입니다. 노력을 중단하지 말고 또 그 성공이 보잘 것 없더라도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잘 된다고 자기 만족에 빠지거나 실수했다고 자기 변명에 급급하면 안 됩니다. 설계도의 목표를 향해 평생 계속 분투 노력해야 합니다. 그러다 보면 언젠가 우리도 육체의 허물을 벗고 그리스도와의 완전한 교제에 들어가는 날이 올 것입니다. 바로 그 날이 우리가 평생 붙잡고 달렸던 그 목표를 완벽하게 이루는 날이지요. 사랑하는 여러분, 좋은 건물이 되려면 우선 좋은 설계가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일단 설계가 있다면 그 설계대로 건축을 해야겠지요. 그리고 일단 건축을 시작했으면 완성할 때까지 멈추지 말아야 합니다. 자주 실수 하거나 큰 진전이 없다 하더라도 어제보다 조금 나갔으면 만족하고, 감사할 줄 알아야 합니다. 하루 하루 최선을 다하십시오. 저 위대한 설계도대로 완성될 여러분의 인생을 상상해 보십시오. 모든 고난을 잊기에 충분할 만큼 즐거운 일이 아닙니까? 인생이란 것이 꼭 집을 짓는 것과 같습니다. 집은 안전하고 크고 아름답게 지으려면 탁월한 설계도가 있어야 합니다. 집은 짓는 사람이 아무리 열심히 잘 지어도 그 설계도 이상으로 지을 수 없습니다. 설계도가 개 집 설계도라고 생각해보십시오. 그러면 아무리 열심히 지어도 그것은 개 집밖에 안 됩니다. 설계도가 아파트라고 합시다. 짓는 사람이 아무리 교회를 짓고 싶어도 그 설계도대로 지으면 아파트가 됩니다. 설계도가 엉터리라고 합시다. 그리고 엉터리 설계도가 100층 짜리 빌딩 설계도라고 합시다. 시공, 즉 빌딩을 짓는 건축가들이 열심히 100층을 다 올립니다. 그러면 그 100층 건물이 어떻게 되겠습니까? 엉터리 100층이 됩니다. 설계도가 엉터리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설계도가 중요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자기의 삶을 반드시 성경이란 설계도에 따라 건축해야 합니다. 신구약 66권 성경은 하나님이 우리들, 하나님의 자녀들의 하루 하루 삶을 위해 준비하신 설계도입니다. 그 설계도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아십니까?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피로 그려졌습니다. 그러니 얼마나 귀합니까. 1년 10년 걸려 만든 것이 아닙니다. 수백 수천 년 동안 만드셨습니다. 우리가 들고 있는 이 성경은 수천 년 동안 수많은 사람들의 인생들과 수많은 나라들의 흥하고 망함과 수많은 성도들의 피와 땀,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십자가 피로 만들어졌습니다. 그래서 세상 모든 민족, 모든 세대,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가정 생활은 어떻게 해야 최고로 행복하게 살 수 있는가! 직장 생활은 어떻게 해야 가장 크게 성공할 수 있는가! 교회 생활은 어떻게 해야 가장 기쁘게 할 수 있는가! 정치는 어떻게, 자녀 교육은 어떻게, 죄와의 싸움은 어떻게, 사업은 어떻게, 사랑은 어떻게, 좌절했을 때는 어떻게, 분노가 일어날 때는 어떻게, 성공했을 때는 어떻게, 그리고 무엇이 성공인가, 무엇이 행복인가, 무엇인 형통인가! 성경은 그 모든 삶에 대한 완전하고 충분하고 탁월한 설계도입니다. 성경에 맞춰 여러분의 삶과 인생을 세워가십시오. 이 일에 실패하면서 성공과 행복과 형통을 기대하지 마십시오. 아무리 열심히 살아도 실패합니다. 그 열심만큼 크게 실패합니다.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피로 그려내신 인생의 설계도인 성경을 따라 남은 육신의 삶을 멋지게 지어 하나님의 이 거하시는 아름다운 성전으로 날마다 지어져 가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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