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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강요 4부 2장 : KS 마크(참 교회의 표지) | 임병욱 목사 | 2024-11-07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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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고린도전서10:14-22절 개역개정14. 그런즉 내 사랑하는 자들아 우상 숭배하는 일을 피하라 15. 나는 지혜 있는 자들에게 말함과 같이 하노니 너희는 내가 이르는 말을 스스로 판단하라 16. 우리가 축복하는 바 축복의 잔은 그리스도의 피에 참여함이 아니며 우리가 떼는 떡은 그리스도의 몸에 참여함이 아니냐 17. 떡이 하나요 많은 우리가 한 몸이니 이는 우리가 다 한 떡에 참여함이라 18. 육신을 따라 난 이스라엘을 보라 제물을 먹는 자들이 제단에 참여하는 자들이 아니냐 19. 그런즉 내가 무엇을 말하느냐 우상의 제물은 무엇이며 우상은 무엇이냐 20. 무릇 이방인이 제사하는 것은 귀신에게 하는 것이요 하나님께 제사하는 것이 아니니 나는 너희가 귀신과 교제하는 자가 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21. 너희가 주의 잔과 귀신의 잔을 겸하여 마시지 못하고 주의 식탁과 귀신의 식탁에 겸하여 참여하지 못하리라 22. 그러면 우리가 주를 노여워하시게 하겠느냐 우리가 주보다 강한 자냐
오늘은 제4부 1장입니다. 참 교회의 표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것을 KS 마크라는 제목으로 공부해 봅니다. 대량 상품 시대에 소비자들이 하는 가장 큰 걱정은 가짜 물품이나 불량품을 살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눈을 부라리고 찾아 보는 것이 바로 품질 표시입니다. 품질 표시는 정부 또는 각종 권위있는 검사 기관에서 상품의 품질, 수량, 포장 등 시장 거래에 필요한 사항을 규정하고 증명, 표시한 것입니다. 여기에는 품질을 구성하는 각 요소에 관한 사실만 나타낸 명세 표시, 농산물에서 1등, 2등으로 나타내는 등급 표시, 정부나 검사기관에서 실시한 검사에 합격하였음을 나타내는 증표와 상품의 성능, 용도, 용법, 안전성, 보관법 등에 관한 표시인 해설 정보 표시 등이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KS마크’와 같은 규격 표시이지요. ‘KS마크’가 붙은 제품은 정부가 바른 제품이라고 인정해 주는 것입니다. 만일 제품이 KS마크를 받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상품에 그런 표시가 없다면 진짜같은 가짜 제품, 품질이 형편없는 불량품이라는 말이지요. 속지 마십시오. 유사품입니다. 교회도 진짜 교회가 있고 가짜 교회도 있습니다. 무엇을 보고 아느냐고요? 품질 표시지요. 즉 교회에도 ‘KS마크’가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일까요? 바른 말씀의 선포와 바른 성례입니다. 참 교회는 말씀의 바른 선포와 성례의 바른 시행를 시행합니다. 그 두 가지가 바로 ‘KS마크’ 입니다. 이제 이 마크를 중심으로 참 교회와 거짓 교회를 비교해봅니다. 이미 말씀 드렸지만 말씀을 바르게 선포하고 성례를 바르게 시행하고 있다면 비록 도덕적으로 아직 형편 없는 수준에 있다 하더라도 ‘교회’라는 이름을 갖는 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교회 내에 있는 이런 저런 실수와 죄들은 분열과 싸움의 구실이 아니라 용서와 화목의 기회로 삼아야 합니다. 그것들이 중요한 교리나 성례의 정당한 집행을 폐지하거나 전복시키지 않는다면 말입니다. 하지만 말씀의 바른 선포와 성례의 바른 집행, 그 두 가지가 부패하고 파괴될 때 교회는 죽게 됩니다. 목을 찔리거나 심장에 치명상을 입은 사람이 죽을 수 밖에 없는 것과 같지요. 그리고 바른 말씀과 바른 성례의 생명력은 오직 교회의 기초이신 그리스도에게만 있습니다(엡2:20; 딤전3:15). 그러므로 이 기초를 무시한 교회가 바른 교회일 수 없습니다. 이 진리의 기둥을 뽑아 낸 교회에는 대신 거짓과 조작이 판을 칩니다. 그런 측면에서 바른 말씀의 교리와 바른 성례의 예배에서 떠난 로마교회는 참 교회라 할 수 없습니다. 교황제도가 교회에 저지른 일을 아십니까? 진리의 말씀 대신에 거짓말을 섞어 만든 패역한 조직과 제도로 교회를 차지했습니다. 그리고 이 악한 조직과 제도는 주의 진리의 말씀을 질식시키거나 아주 꺼버렸습니다. 그리고 주의 성만찬은 가장 추악한 모독 행위로 채워졌고, 하나님께 대한 예배는 각종 미신으로 더럽혀져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미사로 바뀌었습니다. 바른 성경 교리는 완전히 매장되고 제거되었습니다. 공중집회는 우상숭배와 불경건을 가르치는 장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경외하고 경건한 생활을 유지하려는 자는 누구든지 로마교회를 떠나야 합니다. 교황주의자들은 자기들을 떠난 우리를 분리주의자요, 이단이라고 비난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교회에 소속되어 교통하는 목적이 진리에 순종하고 하나님을 바르게 예배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을 고의로 방해하고, 노골적으로 우상숭배를 조장하는 교회라면 하루빨리 떠나는 것이 지혜로운 것입니다. 실상이 그러한데도 로마교회는 옛날 유대인들처럼 허탄한 자랑을 늘어 놓는데 열을 올립니다. 로마교회는 자기들만이 이탈리아, 프랑스, 스페인등에서 활약한 건전한 교리의 전달자들과 거룩한 순교자들의 전통, 그리고 순수한 주교직을 고스란히 계승했기 때문에 참 교회라고 주장합니다. 그리고 아프리카, 이집트, 아시아 등의 교회는 주교직을 계승하지 못했고, 희랍 교회는 ‘사도 교구’인 로마 교황청을 버렸기 때문에 모두 참 교회가 못 된다고 말합니다.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를 나무라는 격이지요. 진리의 터요 기둥이신 그리스도의 복음과 거룩한 성찬에서 떠난 로마교회가 교황청 정도를 떠난 희랍의 교회를 정죄할 수 있을까요? 순수한 진리를 계승하지 못한 것은 문제될 것 없고, 조작된 제도를 계승하지 않은 것은 용서 받지 못할 죄인가요? 로마교회는 자신을 살피지 않기 때문에 염치를 모릅니다. 그래서 로마 카톨릭 교도들은 옛날 유대인들이 타락했을 때 했던 주장을 지금 똑같이 되풀이 합니다. 당시 유대인들도 맹목과 불경건과 각종 우상숭배로 하나님의 종교를 떠나 있었지요. 그리고 그와 동시에 화려한 성전과 복잡한 의식들과, 제사장들의 계승과 권세를 굉장히 자랑하며, 그것들로 자신들의 참 경건을 증명하는 것처럼 생각했습니다. 지금의 로마교회랑 똑같지 않습니까? 이들에게는 옛날 예레미야가 유대인들에게 썼던 약이 역시 특효약입니다. “4너희는 이것이 여호와의 성전이라, 여호와의 성전이라, 여호와의 성전이라 하는 거짓말을 믿지 말라(렘7:4).” 그리고 바울의 말처럼 외적인 혈통이나 계승이나 조건이 아니라 오직 진리이신 그리스도에게 붙었느냐 떨어졌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갈4:22이하; 롬9:6-9; 요10:4-5,14; 18:37). 하나님의 말씀을 멀리 떠난 로마교회는 그리스도의 거룩한 신부의 자리에 대신 추악한 음녀와 창녀를 들여 앉혔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로마교회와 교통하거나 연합할 수 없습니다. 조건이 맞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 조건은 건전한 교리의 일치와 형제적 사랑인데, 사랑은 믿음의 일치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지성이 일치할 때 의지도 따라 연합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키프리아누스가 바울을 따라 한 말처럼 교회 전체의 화합은 순수하게 그리스도를 교회의 감독으로 모시는 경우에만 올 수 있습니다. 키프리아누스의 말을 조금 더 들어 봅니다. ‘교회는 하나이지만 결실이 많으므로 널리 퍼져 많은 교회가 된다. 빛이 하나이면서 그 광선은 많은 것과 같다. 나무의 가지는 많지만 그 굳센 줄기는 하나이며, 한 샘에서 흐르는 여러 갈래 시내들이 각각 스스로의 풍부함에서 넘쳐 흐르는 것 같지만 그 근원은 하나이다. 태양에서 오는 광선을 보라. 아무리 광선이 많아도 태양은 갈라지지 않는다. 그러나 나뭇가지를 꺾어 보라. 꺾인 가지에서는 움이 돋지 않는다. 시냇물의 근원을 막아 보라. 시내는 말라 버린다. 그와 같이 교회는 주의 빛을 풍성하게 받아 전 세계에 퍼뜨리며, 그 빛 하나 하나는 각지에 확산된다.’ 로마교회는 샘의 근원에서 떨어져 버렸습니다. 줄기에서 잘려 나갔습니다. 우리가 저들을 떠나는 유일한 이유는 우리가 고백하는 순수한 고백을 저들이 용납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우리가 그리스도에게 가기 위해 저들에게서 떨어질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오히려 만족하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로마교회는 예배와 재판권을 놓고 로마교회와 고대 이스라엘을 비교하면서 끈질기게 우리를 공격하고 비난합니다. 그만 항복하고 자기들의 교회로 돌아오라는 것이지요. 그렇게 강요할 때마다 저들은 우리에게 두 가지를 요구합니다. 첫째는 우리에게 그들의 기도와 성례와 의식에 참가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주님이 교회에 주신 모든 명예와 권세와 재판권을 로마교회에 대해서도 인정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들 주장대로 자기들이 아무리 부패한 것처럼 보여도 자기들이 참 교회인 것은 취소되지 않는다는 말이지요. 그렇다면 정말 우리가 분리주의자일까요? 이제 나는 다시 한번 우리가 저들에게 돌아갈 수 없는 이유를 밝히 설명하려고 합니다. 그러기 위해 로마교회를 옛날 이스라엘과 비교해보겠습니다. 우선 로마교회의 상태는 여로보함 때의 이스라엘과 비슷합니다. 백성들의 마음을 예루살렘에 빼앗길까봐 우상의 신전을 세우고 우상숭배와 미신에 빠져 하나님의 말씀에서 완전히 멀어졌습니다.(왕상12:25이하). 여로보함 시대의 종교는 완전히 부패했습니다(왕상12:31). 그래서 북이스라엘에서는 참 교회를 찾아 볼 수 없었습니다. 그 이후 아합을 비롯한 이스라엘의 왕들은 하나같이 여로보함을 본 받았습니다. 다 악했지요. 물론 남쪽 유다에서는 가끔씩 선한 왕이 났습니다. 르호보함 때에도 심히 타락했었지만 성전에서는 여전히 율법이 가르쳐 졌고, 제사장이 있었고, 율법대로 의식들이 지켜졌었습니다. 그러나 역시 대부분의 왕들이 북쪽 이스라엘 여로보함과 아합의 길을 따랐습니다. 자신들의 탐욕과 욕망을 채우기 위해 하나님의 말씀을 버렸고, 백성들의 마음을 빼앗기 위해 제도와 의식을 화려하게 꾸몄습니다. 지금의 로마교회가 교리나 예배에 있어서 옛날 여로보함 때보다 조금이라도 나은 점이 있습니까? 오히려 더 추잡하고 더 불순하지 않습니까? 왜 우리는 로마 교회의 미사와 성찬으로 다시 돌아갈 수 없습니까? 옛날 이스라엘의 경건한 성도나 예언자 중 어느 하나라도 벧엘의 우상을 경배했다면 혹시 우리도 돌아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도 그렇게 하지 않은 것처럼 우리도 거짓 말씀과 신성모독의 참피온인 미사에 참여할 수 없습니다. 로마교회가 주장하는 열쇠의 권한도 이미 효력을 상실한 지 오래 되었습니다(마16:19; 18:18). 왜 그러냐고요? 그 열쇠는 주님의 말씀과 하나로 묶여 있는데 저들은 이미 그 말씀을 버렸기 때문입니다. 적어도 저들은 이 점에서 교회가 아닙니다. 오히려 각종 우상숭배와 미신과 불경건을 가르치는 부패한 학교이고, 오류의 소굴입니다. 로마교회는 교회의 ‘KS마크’를 버렸습니다. 물론 나는 교황제도 아래에도 교회의 흔적은 남아 있다는 것을 인정합니다. 그것은 마치 부패한 이스라엘 안에도 참 언약의 흔적들이 남아 있었던 것과 같습니다. 그 흔적들은 하나님이 이스라엘과 맺으셨던 언약이 스스로 이스라엘의 불경건과 싸우며 자신의 생명을 유지한 것과 같은 것입니다. 프랑스와 이탈리아, 독일, 스페인, 그리고 영국에서도 같은 일이 벌어졌습니다. 이미 다니엘과 바울이 예언했던 것처럼(단9:27; 살후2:4) 저들 지역에서는 로마교황이라는 적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성전을 차지하고 앉아 있지만 이후 하나님은 자신의 언약이 침범당하지 않도록 두 가지 방책을 마련하셨습니다. 하나는 세례를 유지하신 것이고, 또 하나는 교회가 완전히 죽지 않도록 몇 가지 흔적들을 보존하신 것입니다. 어떤 건물이 무너질 때 벽이나 귀퉁이가 조금 남는 것처럼 말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거룩한 도성의 모습보다는 바벨론의 모습을 보이고 있는 로마교회에 속한 교회들 속에서도 기적적으로 약간의 남은 자들을 보존하신 것이지요. 그래서 교황의 압제 아래 있는 교회들 중에서도 저들의 광기와 마귀의 간계가 파괴할 수 없는 교회의 표지가 희미하게나마 남아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지금 다루고 있는 교회의 중요한 표지는 이미 저들에게서 완전히 상실되었습니다. 따라서 나는 로마교회가 전체적으로나 회중들 개인적으로나 합법적인 교회의 표지를 갖고 있지 않다고 공언합니다. 로마교회는 교회의 흔적을 약간 갖고 있지만 그래도 참 교회가 아닙니다. 그 강단에서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의 말씀이 선포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탐욕과 욕망을 부추기는 사설이 난무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더럽히는 미사와 성례가 반복되고 있습니다. 교회의 ‘KS마크’는 말씀의 바른 선포와 성례의 바른 시행입니다. 로마교회는 그 둘에서 모두 실패했습니다. 그러므로 저들이 비록 약간의 언약과 세례 등의 교회의 흔적들을 갖고 있기는 하지만 합법적으로 참 교회라고 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저들에게서 떠난 것은 진리의 터와 예배의 기둥이신 그리스도께로 돌아가기 위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잊지 마십시오. 말씀의 바른 선포와 성례의 바른 시행은 참 교회의 표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바르게 선포되지 않고, 성례가 바르게 시행되지 않고 있다면 그 교회는 거짓 교회입니다. 교회의 흔적을 가지고 있는 가짜 교회입니다. 얼른 그 교회에서 떠나야 합니다. 혹은 그런 주장을 하는 사람을 교회 밖으로 쫓아 내야 합니다. 그러나 말씀의 바른 선포와 바른 성례가 시행되고 있다면 비록 도덕적으로 수준이 낮고 결함이 있어도 참 교회입니다. 이런 바른 표지가 있는 교회는 아무리 결함이 있더라도 버리면 안 됩니다. 교회에 바른 표지가 있고 성실하게 그 두 가지를 시행하면 반드시 교회는 복을 받고 또 풍성한 열매를 거두게 되어 있습니다. ‘가정 학교’는 단순한 학교가 아니라 피로 맺은 가족입니다. 조금 가르치는 방법이 맘에 안 든다고, 가르치는 것이 좀 시원찮다고, 함께 배우는 형제의 성격이 맘에 안 든다고, 자매가 실수해서 죄를 지었다고 그 가정을 버리고 떠날 수는 없잖습니까? 우리가 그리스도의 한 몸인 교회로서 존재할 때 교회의 결점들은 분열이 아니라 용서의 기회입니다. 교회에 어떤 결점이 발생할 때 얼른 그것을 용서의 기회로 취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첫 현관문이 바로 죄의 용서이고, 죄의 용서는 교회의 하나됨과 생명과 기쁨을 위해 항상 그리스도의 보혈의 강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섬기는 교회가 바른 말씀이 선포되고 바른 성례가 시행되고 있다면 참 교회인줄 알고 부족함과 결점은 기꺼이 용서하고 하나되는 기회로 삼아 그리스도 안에서 충만한 은혜와 복을 누리는 신앙생활을 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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