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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강요 4부 6장 : 가짜 족보(로마교회의 수위권) | 임병욱 목사 | 2024-11-07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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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골로새서1:13-23절 개역개정13.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14.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속량 곧 죄 사함을 얻었도다 15. 그는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이시요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 이시니 16. 만물이 그에게서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왕권들이나 주권들이나 통치자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17. 또한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 18. 그는 몸인 교회의 머리시라 그가 근본이시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신 이시니 이는 친히 만물의 으뜸이 되려 하심이요 19. 아버지께서는 모든 충만으로 예수 안에 거하게 하시고 20.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이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하게 되기를 기뻐하심이라 21. 전에 악한 행실로 멀리 떠나 마음으로 원수가 되었던 너희를 22. 이제는 그의 육체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화목하게 하사 너희를 거룩하고 흠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그 앞에 세우고자 하셨으니 23. 만일 너희가 믿음에 거하고 터 위에 굳게 서서 너희 들은 바 복음의 소망에서 흔들리지 아니하면 그리하리라 이 복음은 천하 만민에게 전파된 바요 나 바울은 이 복음의 일꾼이 되었노라
오늘은 제4부 6장입니다. 이 장에서는 로마교회 교황의 수위권에 대한 문제를 비판하고 있습니다. 로마교회가 교황직에 대한 수위권으로 주장하는 율법의 대제사장과 베드로는 결코 교황제도의 뿌리가 될 수 없다는 내용입니다. 그것을 ‘가짜 족보’라는 제목으로 공부해 봅니다. 족보는 중국 후한 시대(BC202-220)에 왕실의 계보를 기록하면서 시작되었답니다. 그러나 사실은 성경이 훨씬 더 오래된 족보(톨레돝) 책이라는 사실을 아시는지요? 구약은 10개의 족보로 구성됩니다(창2:4; 5:1; 6:9; 10:1; 11:10;11:27; 25:12; 25:19; 36:1; 37:2). 그리고 신약에는 단 하나의 영원한 족보,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족보 마1:1)가 소개되지요. 우리나라의 족보는 고려시대부터 편찬되었다고 하는데, 최고 오래된 족보는 1476년에 발간된 안동권씨의 ‘성화보’라고 합니다. 족보는 서문(序文)으로 시작되어 조상들의 사적(事蹟)이나 행장기(行狀記), 묘비문, 또 조상 묘에 대한 지도 등을 담고 있습니다. 족보는 오직 양반계급을 위한, 양반증서와 같은 것이었지요. 그것이 없으면 곧 상민이 되어 병역 등 각종 의무를 부담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수많은 가짜 양반과 가짜 족보들이 생긴 것입니다. 로마교회는 로마교회의 감독이 모든 교회의 수장이 된다고 권력을 찬탈한데서 그치지 않고 로마교회의 감독을 교황의 자리에 앉혀놓고 교황이 지상 교회의 머리(수위권)라고 주장합니다. 그것을 증명하는 족보가 있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그 교황의 족보는 가짜입니다. 로마교회는 교황이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지상의 모든 교회를 하나로 연합시키고 다스리기 위해 임명된 유일한 ‘머리’(갓돌 Capstone)라고 주장합니다. 그 머리가 없다면 지상의 교회들은 산산조각 난다는 것이지요. 정말 그럴까요? 그 주장을 합리화 하기 위해 로마교회가 찾아낸 뿌리가 구약의 대제사장직과 신약의 베드로입니다. 그러나 예루살렘 성전이나 대제사장은 영적인 이스라엘인 교회를 모형해 주는 예표의 직분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인 교회를 소개하기 위해 이스라엘이라는 한 민족을 들어 그들에게만 주셨던 것입니다. 이제 교회가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세워지고, 전 세계로 퍼진 때에는 그 제도들이 더 이상 교회의 구심점이 될 수 없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예표였던 성전의 대제사장직은 그 권리와 함께 완전히 그리스도에게로 옮겨졌습니다(히7:12). 그리고 구약의 대제사장직은 그 자리를 계승할 자들을 계속 필요로 했지만, 그리스도의 대제사장직은 누구에게도 승계되지 않으십니다. 또한 대리자도 세우지 않으십니다. 그리스도는 단번에 드린 자신의 십자가로 하나님의 진노를 푸시는 영원한 속죄의 대제사장이 되셨고, 지금도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중보의 기도로 대제사장직을 수행하고 계십니다(히4:15-16). 그리고 로마 교황청이 생명을 다해 붙들고 있는 사도 베드로의 수위권도 지푸라기와 같습니다. 베드로를 놓치면 교황의 족보는 와르르 무너집니다. 그들이 뻔질나게 내세우는 유일한 근거는 오직 마태복음의 말씀입니다.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마 16:18-19). 정말 이 말씀이 베드로를 그리스도의 지상교회의 후계자로 삼는다는 말씀일까요? 또 열쇠의 권한이 전 세계 교회를 다스린다는 뜻일까요? 또 그 권세는 꼭 로마에 있는 감독(교황)들에게만 이어져야만 한다는 말씀일까요? 요한복음 21장의 말씀도 교황주의자들이 즐겨 인용하는 것입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내 어린 양을 먹이라’(요21:15). 그래서 레오1세(440-461)는 이 구절을 인용해서‘양을 먹이는 그 권세는 더욱 특별하게 베드로에게 위탁 되었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다른 장로들에게도 똑같이, 교회를 먹이라고 권고합니다(벧전5:2-4). ‘양을 먹이라’는 말씀이 베드로의 독특한 직위나 권세를 말하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지 않습니까? 그리고 ‘매고 푸는 열쇠의 권한’이 세계 모든 교회를 지배하는 권세가 아니라, 죄를 그대로 두거나 용서하는 권세를 의미한다는 것은 이미 상식입니다(요20:23; 고후5:18; 10:6). 즉 열쇠는 하나의 은유로서, 어떤 사람은 믿음으로 저주의 속박에서 풀려 하나님과 화목하게 됨을 얻으며 또 어떤 사람은 불신앙으로 인해 더욱 저주와 진노의 속박을 받게 된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베드로가 받은 그 약속은 사도직의 존귀함을 의미하는 것이기는 하지만, 베드로를 유일하고 독특한 존재로 부르시는 것은 아닙니다. 키프리아누스의 말처럼, 한 사람에게 주신 것은 모두에게 주신 것이며, 그럼으로써 그 모두가 하나라는 것을 알리신 것입니다. 어거스틴도 온 교회가 베드로와 함께 그 열쇠를 받은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아무도 교회의 머리가 될 수 없습니다. 로마교회의 주장대로 베드로에게 사도 중에 최고의 ‘지위’를 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곧 최고의 ‘권력’을 갖는다는 뜻은 아닙니다. 베드로는 다른 사도들보다 높은 영예를 누릴 수는 있지만, 더 큰 권세를 받았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아무 편견 없이 성경을 읽어보면 그 사실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베드로는 다른 사도들과 항상 동등한 위치에 있었으며, 때로는 명령을 받기도 하고(행8:14; 15:5-12), 또 책망을 듣기도 했습니다(갈2:11-14). 특히 사도 바울은 노골적으로 자기가 베드로와 동등하다고 밝힙니다(갈1:18; 2:8). 아마 교황주의자들이 베드로를 내 세우려면 어떻게든 바울을 처리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이 베드로에게 그 약속(마16:18)을 하신 때가 언제입니까? 그리스도에 대한 베드로의 신앙고백 다음입니다. 즉, 교회의 유일한 기초와 머리는 그리스도밖에 없다는 고백인 것입니다. 주님은 그 유일한 기초 위에 자신의 교회를 세우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터 외에 다른 터를 놓으려는 것은 저주 받을 일입니다(고전3:11). 만보를 양보하여서 혹시 베드로가 당시 열 두 제자 중에 최고의 권세를 갖고 있었다 하더라도 그 특수한 상황을 일반화 시켜서 보편적인 법칙으로 만든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극소수의 무리들 가운데 있었던 일을 전 세계의 교회에 적용할 수는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들은 두루미와 벌을 예로 들면서 단 하나의 지도자를 주장합니다만, 그러면 정말 두루미와 벌은 한 통치자를 선거하기 위해서 전 세계에서 모이다는 말입니까? 그들은 또 호머의 말도 인용합니다. ‘다수의 지배는 좋지 않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그 말은 한 사람이 세계를 지배해야 한다는 말이 아니라 한 나라에 두 임금은 좋지 않다는 말입니다. 호머의 말처럼 ‘권력은 동료를 용인하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아니, 혹시 전 세계는 한 군주가 다스리는 것이 좋을 수 있다 하더라도, 교회는 그렇지 않습니다. 교회는 오직 한 머리이신 그리스도에게서 세계에 흩어져 있는 온 교회들이 각 질서와 조직대로 필요한 은사와 힘을 공급 받아 신령한 몸으로 지어져 갑니다(엡4:16). 주님은 지상 교회를 위하여 따로 특별한 대리자를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성경은 단 한번도 사람에게 그 ‘머리’란 영광을 돌린 적이 없습니다(엡1:22; 4:15; 5:23; 골1:18; 2:10). 그리스도께서 지상 교회에 임재 하시는 방법은 ‘사람 머리’(교황)가 아니라 ‘사람 봉사’입니다(엡4:7,11). 세상의 모든 교회가 하나가 되는 것도 ‘사람 머리’가 아니라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통해 하는 것입니다(엡4:4-5). 만약 교황과 같은 ‘사람 머리’가 필요했다면 왜 성경에 그 중대한 사실을 첨가 시켜 놓지 않으셨겠습니까? 로마교회가 주장하는 또 하나의 주장은 로마는 베드로의 교구였기 때문에 로마교회와 그 감독직이 전 세계 교회의 머리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로마교회의 주장은 딱할 정도로 단순합니다. 그들이 이런 주장으로 사람들을 설득하려면 먼저 다음 몇 가지 숙제라도 풀어주어야 할 것입니다. 첫째는 베드로가 정말 로마에서 감독으로 있었느냐 하는 것입니다. 둘째는 베드로가 로마의 감독이었다는 것이 왜 로마교회를 그렇게 존귀하게 해주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셋째, 혹시 그렇다 하더라도 어떻게 한 장소가 그런 영광을 누릴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우선 베드로가 로마의 감독으로 있었다는 근거는 대단히 빈약하고 막연합니다. 거의 소설과 같습니다. 일단 성경의 계시에 의하면 베드로는 로마의 감독이었다기 보다는 예루살렘의 감독이 되는 것이 옳습니다(갈2:7-8). 만일 로마교회의 감독이 있었다고 한다면 베드로가 아니라 대신 이방인의 사도로 세움 받은 바울이 그 자리를 얻었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누가의 기록(행28:15-16)이나 바울의 서신들(롬16:3-16)을 보면 베드로가 로마에 있었다는 증거를 전혀 발견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그 반대로 그가 로마에 없었을 것이라고 증거해줍니다. 특히 바울이 로마서를 기록하면서 베드로가 당시 로마교회의 감독이었다면 많은 사람을 들먹거리는 그 인사에서 당시 감독이었을 베드로에 대한 인사를 빼먹을 수 있었을까요? 또 바울은 빌립보 교인들에게 편지하면서 당시 로마에 있던 자기에게는 도움이 될만한 사람이 아무도 없다고 토로합니다(빌2:20-21). 그리고 디모데에게 보낸 편지에서는 로마의 동료들이 다 자기를 버렸다고 더 심하게 불평합니다(딤후4:16). 저들의 주장처럼 당시 베드로가 로마에 있었다면, 베드로가 그 몹쓸 도망자들 중 하나였을 것이란 말입니까? 실제 역사에 비추어 보더라도 베드로는 예수님이 승천하신 후 약 20여년 동안 예루살렘에 머물렀습니다(갈1:18; 2:1이하). 그 후에 그는 안디옥으로 갑니다(갈2:11). 성경의 증거는 그것 뿐입니다. 물론 고대 교부들의 말이 일치하는 것으로 보아 베드로가 로마에서 죽은 것은 인정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가 로마에서 감독직을 수행했다든지, 그것도 오래 했다는 것은 인정할 수 없습니다. 만약 그가 로마에 머물렀다 하더라도 17년 중에서 안디옥에 머문 시간을 뺀 나머지였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승천하신 다음부터 베드로가 순교했다고 하는 네로의 통치 마지막 까지는 37년 밖에 안되기 때문입니다. 그 37년 중 그가 예루살렘에서 활동했던 20년을 빼면 17년 밖에 안 남는다는 것이지요. 그러면 그가 로마교회에 머물렀던 시간이 얼마나 되었을까요? 그 짧은 시간에 로마교회의 감독직을 수행했을리도 만무하거니와 그럴 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어떤 장소가 교회의 ‘수위권’을 보장한다는 말은 더 우습습니다. 그럴 것이라면 당연히 예루살렘이 되어야지요. 거룩하신 감독장,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영원한 제사를 드리셨던 예루살렘도 특별한 권세와 영예를 주장할 수 없다면 어찌 감히 일개 제자가 그렇게 할 수 있다는 말입니까? 또한 첫 이방 교회요, 쟁쟁한 사도들이 목회했던 안디옥 교회는 또 어떻습니까? 베드로와 함께 기둥이라고 불리었던 야고보의 예루살렘과 요한의 에베소는 또 어디 갔습니까(갈2:9)? 왜 아무 영예가 없습니까? 물론 당시 대 제국의 수도였던 로마에 세워진 교회가 탁월하고 유력했던 것은 사실일 것입니다. 로마교회의 감독이 황제를 알현하고 정치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도 많으니까 말입니다. 그리고 동방과 희랍과 아프리카에서 많은 좋은 감독들이 로마와 자주 교류하고 체류하기도 했었습니다. 그러나 고대 교부들 그 누구도 교황이라는 지상의 한 머리 아래에서 세계 모든 교회의 성직 계급과 제도가 통일 된다고 생각한 적이 전혀 없습니다. 키프리아누스는 유일하신 감독 그리스도에게서 모든 감독들이 그 한 부분을 차지한다고 말하면서, ‘그리스도의 신부는 음녀가 될 수 없다. 그는 하나의 집을 알며 정절과 정숙으로 결혼의 신성함을 지킨다’라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백보를 양보해서 혹시 베드로가 로마교회의 감독이었다 하더라도 그것이 전 세계 교회에 대한 로마교회의 영구적인 수위권을 보장하지 않습니다. 앞서도 살펴보았지만 교황 제도란 성경에 기록된 직분이 아니라 인간의 탐욕이 만들어낸 자리입니다. 역사를 살펴보면 누구나 알 수 있지 않습니까? AD.313년에 기독교가 로마의 국교가 된 후, AD.330년에 로마가 황제의 궁을 이탈리아 로마(서로마)에서 동쪽인 콘스탄티노플(동로마), 지금의 터키 이스탄불로 옮깁니다. 천도를 한 것이지요. 이때부터 서로마는 세력이 많이 약해져서 고트족, 훈족, 반달족 등의 침략이 많았습니다. 그 때마다 동로마에서 군사를 지원했지만 번번히 실패했습니다. 그러다 AD.452년경 서로마에 있던 로마교회 감독이었던 감독인 레오I세가 어떻게 외적의 침입을 잘 무마해서 평화로운 상태가 되게 했습니다. 그러니까 레오I세가 갑자기 큰 공로자 되어서 그의 영향력이 커졌습니다. 그러자, 레오I세는 스스로를 사도적 계승을 받은 자로, 그리고 로마교회를 사도들의 계승을 받은 교회라고 주장했습니다. 그 때로부터 시간이 흐르면서 로마교회 감독은 점점 권력을 가지기 시작했고, AD.590년 그레고리 1세 로마교회 감독은 로마교회 감독은 모든 교회감독의 머리, 곧 교황이며, 모든 교회 감독들은 교황(Universal Father)의 명령에 순종해야 한다고 선언을 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을 마지막 교부요, 최초의 교황이라고 선언합니다. 이때부터 로마 캐톨릭이 시작됩니다. 그러면서 콘스탄티노플 대감독이었던 요단 감독과 수위권 다툼을 시작합니다. 그런데 뜻밖의 사건이 하나 벌어집니다. 황제 마우리케(AD.582–602 재위)가 군비 절약을 이유로 노병들을 해산시키려 하자 로마 군대에서 반란이 일어난 것입니다. 반란의 주동인 포카스는 황제 마우리케를 죽이고 자신이 황제가 됩니다. 포카스가 마우리케를 축출한 뒤 황제가 되었지만, 그의 통치는 혼란과 폭정으로 점철되었습니다. 그는 군사적, 정치적 경험이 부족했고, 그로 인해 동로마 제국은 내부적으로 혼란에 빠졌습니다. 그의 재위 기간(AD.602–610)동안 페르시아와의 전쟁에서 참패했으며, 슬라브와 아바르 족의 침입도 증가했습니다. 또한 그는 권력 유지를 위해 폭력적인 방법을 자주 사용하여 비잔틴 귀족들과 콘스탄티노플 교회들로 부터 점차 미움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포카스는 얼른 당시 서로마교회 감독(교황)이었던 보니파케 3세에게 머리를 숙이고 황제 대관식을 치루고 정치적 동맹을 맺습니다. 그리곤 로마교회 감독인 보니파케 3세가 세계 모든 교회의 머리(수위권)라고 공식적인 선언을 합니다. 즉, 로마교회가 모든 교회의 머리가 된다는 선언이었습니다. 이로써 로마교회의 수위권과 교황권에 대한 논쟁이 종식됩니다. 말하자면 교황의 수위권은 주님이 주신것이 아니라 황제 포카스가 준 것이라고 봐야 할 것입니다 정리합니다. 로마교회는 자신들의 욕망과 탐욕을 채우기 위해 스스로 교회의 머리가 되고, 이를 정당화 하기 위해 엉뚱한 족보를 만들어 놓았습니다. 권력을 지극히 사랑했던 자들이 만들어낸 소설입니다. 로마 감독이 전 세계 교회 위에 ‘수위권’을 갖는다거나, 그 감독직이 계속 로마교회에서만 계승된다는 것은 성경이 아닌 그들이 만든 가짜 족보에나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아담의 타락 이후 부패한 인간의 탐욕은 이처럼 주님의 자리를 탐할 정도로 무섭습니다. 쥐꼬리만한 권력이라도 쥐면 사람이 달라집니다. 윗사람도 아랫사람도 없습니다. 하나님도 없습니다. 권력이 뭡니까? 권력은 조금이라도 대접받으려는 욕망입니다. 권력은 내가 남을 조종하고 싶은 욕망입니다. 어디서든 내 뜻대로 하고 싶은 욕구입니다. 사탄은 그렇게 말세의 인생들을 권력의 매력으로 사로잡습니다. 세상은 물론 교회 안에서 일어나는 많은 다툼의 핵심에는 권력에 대한 욕망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늘 주님 앞에 엎드려 자기를 살펴야 합니다. 저와 여러분은 탐욕에 눈이 멀어 남에게 대접받으려는 자리에 앉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처럼 자기를 부인하고 늘 섬기는 자리에 앉아 복음을 위해 사는 삶이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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