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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강요 4부 7장 : 암세포의 성장(교황제도의 기원과 발전) | 임병욱 목사 | 2024-11-07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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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베드로전서5:2-3절 개역개정2. 너희 중에 있는 하나님의 양 무리를 치되 억지로 하지 말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자원함으로 하며 더러운 이득을 위하여 하지 말고 기꺼이 하며 3. 맡은 자들에게 주장하는 자세를 하지 말고 양 무리의 본이 되라
오늘은 제 4부 7장입니다. 이 장에서는 교황제도의 시작과 발전에 대한 비판을 다루고 있습니다. 칼빈은 교황제도가 성경적인 근거도 없으며, 교황권의 강화는 교회의 원래 본질과 사명에서 벗어난 세속적 권력의 형태가 되어 교회의 부패와 타락을 가속하는 잘못된 방향으로 발전했다고 주장합니다. 그것을 ‘암세포의 성장’이라는 제목으로 공부해 봅니다. ‘암세포’는 고대 이집트의 미이라 중에서도 발견되는 걸 보면, 어쩌면 암(癌)은 인류의 등장과 함께 시작되었을지 모르지요. 영어로 암을 ‘캔서’(cancer)라고 하는데, 이 말은 히포크라테스가 암을 카르키노스(karkinos, 게)라고 부른데서시작되었다고 합니다. 암세포가 게 껍질처럼 생겼다거나, 게걸음 치듯 계속 옆으로 확장, 전이 된다는 뜻 같습니다. 암은 원래 정상 세포가 어떤 발암 인자의 작용으로 불규칙하게 분열함으로써 우리 몸의 질서와 통제를 벗어나 제 멋대로 마구 증식, 전이하는 현상입니다. 곧 이미 우리 몸 안에 있는 암세포가 무언가의 자극으로 이상 증식과 변이를 하는 것이지요. 가장 분명히 밝혀진 암의 발생 원인 중 하나는 흡연으로 폐, 입, 혀, 위, 방광, 자궁, 간 등에 이상 변이를 일으킨답니다. 그리고 담배에 술을 더 하면 그 발생 가능성은 비약적으로 높아진답니다. 로마 교황제도는 순수한 교회에 암세포와도 같습니다. 타락한 인간의 탐욕과 타락이 교회 안으로 슬며시 들어와 점점 놀라운 속도로 성장해서 결국 자기의 모 세포인 교회의 순수한 교리와 제도를 파괴해버렸습니다. 이미 살펴본 대로 교황제도는 결코 성경에 근거가 없습니다. 또한 교황제도의 근간이 되는 로마의 감독직 역시 고대 교회 안에서는 다른 교회들의 감독직보다 특별하지 않았습니다. 로마 교회의 감독직이나 교황의 수위권에 대한 주장은 니케아 회의(AD.325)의 결정에서부터 오해되어졌습니다. 거기서 처음으로 로마 교회의 총감독에게 첫째 자리가 주어졌고, 주변의 다른 교구들의 교회들도 돌아보라는 명령이 내려졌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 결정은 로마교회의 총감독을 다른 교회의 머리로 세운 것이 결코 아닙니다. 여전히 지도자 중 하나로 여겼습니다. 그래서 당시 로마교회의 감독인 율리우스를 대신해서 간 두 명의 대리자들에게 네 번째 좌석이 배치 되었습니다. 예루살렘, 안디옥, 그리고 알렉산드리아의 감독들 다음 자리였지요. ‘강도회의(robber synod)’라 불리우는 에베소 회의(AD.449) 때에도 로마 총감독 레오의 사절들이 참석했지만 알렉산드리아 총감독 디오스코루스가 마치 당연한 권리인 것처럼 그 회의를 주재했습니다. 더욱이 로마 감독 레오가 그 회의에 편지 두 통을 보냈으나 디오스코루스에 의해 발표를 제지 당합니다. 그리고 레오의 대리자들도 전혀 첫 자리를 요구하지 않았습니다. 다음에 있었던 칼케돈 회의(451)에서는 로마의 총감독 레오가 앞선 회의의 소란을 구실로 황제 마르키아누스와 황후 풀케리아에게 간청해서 의장이 되어 회의를 주재합니다. 즉, 레오의 그 첫 자리는 그가 로마교구의 감독이기 때문이 아니라 필요에 의해서 황제의 특별한 은전(恩典)으로 그렇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레오 자신도 그것을 비상하게 얻은 특권이라고 여겼습니다. 정상적 관습에 속한 것도 아니고 영구적인 것도 아니라는 것이지요. 그런 분위기는 꽤 오랜 후까지 이어집니다. 그러면 교황주의자들이 미친듯이 자랑하는 ‘수좌 대주교(primate)’등 기타 교만한 칭호들은 언제부터 시작된 것일까요? 이는 교회의 순수성이 지켜진 초기에는 전혀 들어볼 수 없었던 말들임에 틀림없습니다. 키프리아누스도 코넬리우스를 부를 때 단지 ‘형제’‘동료 감독’등이라고 말했습니다. 또 카르타고 회의는 아무도 ‘사제장’혹은 ‘첫째 감독’이라고 부르지 말고 그저 ‘제일 교구의 감독’이라 하라고 결정했습니다. ‘최상의 교황(suprene pontiff)’이니, ‘지상 교회의 유일한 머리’니 하는 이름들은 고대 교회에서는 전혀 생소한 것이었습니다. 로마 교회의 장로였던 제롬도 로마 교회의 교만을 이렇게 경고합니다. ‘만일 권위를 원한다면 세계는 일개 도시보다 크다. 왜 그대들은 한 도시의 관습을 내게 제시하는가? 감독은 다 동일한 가치를 가졌고 다 동일한 사제직을 가졌다. 재물의 많고 적음에 따라 감독이 높아지거나 낮아지는 것이 아니다.’ 사실‘보편적 감독’이란 호칭은 콘스탄티노플의 감독 요안네스가 첫째 감독 자리에 욕심을 부리기 전까지는 논쟁거리가 되어 본 적이 없습니다. 이 때 로마의 감독 그레고리우스도 ‘자기의 자리’를 빼앗기지 않으려고 강력하게 방어를 하지요. 그 이름 자체가 세속적이고 모독적이고 적그리스도적이라며 요한네스를 강력히 공격을 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요한네스를 동료들 중에 으뜸이 되려고 자기를 높임으로써 동료들을 멸시한 천사 루시퍼에 비유하기까지 합니다(사14:12-15). 그러나 사실 로마교회의 감독이 모든 교회의 머리라는 사실을 빼앗길까봐 그랬던 것입니다. 이미 암세포가 많이 커져 있었던 것이지요. 고대 교회에서는 로마교회 총감독의 권위는 황제 및 대감독들과의 관계 속에서 항상 제한적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마교회는 로마의 감독이 모든 교회 위에 재판권을 가졌다고 주장합니다. 이는 로마 감독이 다른 교회들을 지배하려는 욕망이 꿈틀거린 것이지요. 저들은 아주 일찍부터 서둘러 그 욕망을 성취하려 했습니다. 그리고 당시 역사적인 여러 상황들은 그들에게 매우 유리하게 돌아갔습니다. 정치적으로도 매우 불안했고, 교회도 많은 분란에 시달렸습니다. 예를 들어 동방교회가 아리우스파 때문에 소란을 겪었을 때 정통 신앙의 지도자였던 아타나시우스가 추방을 당해 로마로 피신해 옵니다. 거기서 그는 로마 감독 율리우스의 정중한 대접과 도움을 받습니다. 이단자 유티케스까지도 로마의 감독 레오에게 호소합니다. 또 자기 감독에게 정죄를 받은 장로들이나 자기 지방의 교회 회의에서 정죄를 받은 감독들도 저마다 곧 로마교회로 달려와 호소했습니다. 아프리카에서는 이런 일이 너무 자주 일어나자 감독들은 해외에 호소하는 자를 파문시키기로 결정할 정도였습니다. 남의 일에 개입하기를 갈망하던 로마교회와 또 즐겨 로마를 피난처로 삼던 당시 감독들과 장로들의 필요가 맞아 떨어져 로마 교회의 위상은 이상한 방향으로 높아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힘있고, 돈있고, 권세있는 자에게 기대려는 인간의 타락한 습성이 교황이라는 암세포를 키운 것이지요. 그러나 교회의 고유 권한이라 할 수 있는 것들, 즉 감독 임명, 회의 소집, 상소 수락이나 재판권, 그리고 징계 명령과 견책 등을 중심으로 보면 로마교회의 위치는 특별한 것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탈리아의 지방 감독들은 로마에 가서 취임식을 하는 버릇이 있기는 했었지만, 대감독들은 그런 습관을 거절했습니다. 취임식 때에는 서로 대표들을 파견하며, 편지를 보내 신앙고백과 거룩한 정통적 회의들을 지지 한다는 입장을 표현했습니다. 이 때도 로마교회는 ‘상전’이 아니라 ‘동료’일 뿐이었습니다. 또 어떤 감독이 잘못을 했을 때에는 모든 감독이 공통으로 가진 권한으로 서로 충고하고 견책했습니다. 특히 회의 소집은 그 지방 대감독이 알아서 했고, 세계적 회의는 황제만이 소집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로마교회는 다른 교회들의 상소를 받고 그들을 재판하는 권세를 얻으려고 안절부절 했지만 그 때마다 세상으로부터 거센 저항과 비난을 받았습니다. 심지어 아프리카교회가 어거스틴도 참여했던 밀레비스 회의(AD.416)에서 ‘바다를 건너 가’ 상소하는 자들을 파문하기로 결정하자 로마교회 측은 그것을 무효화 시키려고 위조문서를 이용하기까지 했습니다. 사르디카 회의 결정을 니케아의 것으로 둔갑시켜 로마교회의 재판권을 주장하려 했던 것이지요. 그라티아누스는 그런 너절한 위조문서들을 많이 모아 놓았습니다. 그리고 황제 콘스탄티누스는 자기에게 상소한 감독들의 소송을 로마 감독 멜키아데스에게 재판하도록 명령했고, 한 쪽이 그 재판에 대한 재심을 요청하자 이번엔 그것을 아를(Arles)의 감독에게 다시 맡깁니다. 재판권이 로마 교회만의 것이라면 그럴 수 있는 일입니까? 이는 다 로마의 감독이 모든 감독들의 머리이거나, 교회의 재판권이 로마교회에만 있었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들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언제부터 감독과 교회의 수위권 논쟁에 불이 붙었을까요? 로마제국의 수도가 로마에서 콘스탄티노플로 옮기면서부터 입니다. 제국의 수도를 옮김에 따라 자연히 기존 로마의 교회와 새 수도의 교회는 수위권 다툼에 들어 갑니다. 이노센트는 교회의 대감독구가 세상 행정구의 변화를 따라 가서는 안 된다고 서둘러 법을 발표하기도 하지만 이미 늦었습니다. 앞서 튜린(Turin) 회의에서는 행정중심지에 우선적으로 감독을 두며, 그 중심지를 옮기면 대감독의 권리도 따라 옮아간다고 결정해버렸습니다. 그러니 싸움이 날 수 밖에 없었지요. 콘스탄티노플의 감독들은 잽싸게 그 ‘수도의 특권’을 주장합니다(제1차 콘스탄티노플 회의). 그리고 그 보다 훨씬 뒤 칼케돈 회의에서 같은 결정이 통과 됩니다. 그러자 로마의 감독 레오는 맹렬하게 반발하면서 그런 결정은 다 무효라고 외칩니다. 그레고리우스 1세 때의 로마교회는 크게 존경을 받고 있었습니다. 당시 주변 정치적 상황이 매우 불안했고, 그런 무질서 속에서 오히려 로마교회의 권력은 크게 높아졌습니다. 그러나 그레고리우스는 콘스탄티노플의 요한이 스스로 자신을 ‘보편적 총대감독(the universal patriarch)’이라고 폭탄 선언을 하자 강력히 비난합니다. 그는 누가 그 칭호를 쓰든 그것은 악하고 불경건하고 지독히 가증한 짓이라고 경멸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과도한 행정 잡무에 눌려 목자의 일을 하지 못하며 목자의 자리에 있는 자신에 대해 늘 탄식했습니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당연한 것처럼 여겼던 로마 감독의 수위권을 뺏기지 않으려는 욕망이 자리자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일단 로마 교황권이 머리를 내밀자 사태는 겉잡을 수 없이 악화되었습니다. 그렇게 된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분명 감독들의 무지와 게으름입니다. 암세포에 대항할 저항력을 상실한 것입니다. 베르나르드는 깊이 절망하여 탄식했습니다. ‘전 세계의 각종 극악무도한 자들이 다 로마로 몰려와 교황에게 아부하고 한 자리 얻으려 한다. 교회 안에는 탐욕자들과 강도들과 가증한 자들이 판을 친다. 부자들의 거리에 가난한 자들의 생명들이 힘 없이 흩어져 있다. 진흙탕 속의 진주는 먼저 집는 자가 임자다. 그래도 감독과 사제들은 비싼 치장으로 온 몸을 두르고 아무 일 없는 듯 목회의 의무를 수행한다. 아, 그것은 양을 치는 목장이 아니라 마귀들을 먹이는 곳이다. 교회들은 갈갈이 찢기고 수족이 잘렸다. 성직자들이 부지런히 행하는 일들은 저들이 권력을 가졌다는 것은 증명하지만 의는 증명하지 못한다.’ 로마교회의 교황권을 확립하는데 결정적인 공을 세운 두 왕이 있습니다. 하나는 마우리케 황제가 살해된 후 그 뒤를 이은 황제가 된 콘스탄티노플의 포카스이고, 또 다른 하나는 로마교회의 감독 자카리아스와 협잡하여 왕좌를 찬탈한 갈리아의 페핀입니다. 노병들의 해산에 반발한 포카스가 황제 마우리케를 암살하고 자신이 황제가 된 후 정치적 입지를 다지기 위해 자신을 지지하지 않는 비잔친 귀족들과 콘스탄티노플의 감독 요한 대신 로마교회 감독(교황) 보니파케 3세와 손을 잡습니다. 그리곤 로마교회 감독인 보니파케 3세가 세계 모든 교회의 머리(수위권)라고 공식적인 선언을 합니다. 이 사건은 교황 수위권 확립의 중요한 초석이 되었습니다. 그 뒤 메로빙거 왕조의 마지막 왕인 히데리크 3세를 폐위하고 프랑크 왕국의 왕이 된 페핀 대제(Pepin the Short, 재위: 751-768년)는 자신이 왕위에 오르기 위해 교황의 지지를 요청했습니다. 당시 교황 자카리아는 페핀의 왕위를 정당화하며 그를 지지했습니다. 이 사건은 교황이 세속적인 권력에 관여해 왕의 정당성을 승인하는 중요한 선례를 남겼으며, 교황의 정치적 권위가 강화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AD.754년, 교황 스테파노 2세는 롬바르드족의 위협으로부터 구원을 요청했고, 페핀 대제는 이를 군사적으로 지원했습니다. 그리고 페핀은 롬바르드족으로부터 탈환한 이탈리아 북부의 영토를 교황에게 기증했습니다. 이 영토는 ‘교황령(Papal States)’으로 발전하게 되어 교황이 정치적, 세속적 통치자로서도 권위를 가지게 되는 중요한 기반이 마련되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 페핀 대제로부터 프랑크 왕국의 왕위를 물려받은 샤를마뉴 대제는 교황과의 긴밀한 협력 관계를 통해 교황권을 강화하고, 이를 바탕으로 게르만족, 롬바르드족, 사라센 등을 정복하면서 기독교 세계의 수호자로 자리매김하면서 문화적, 정치적, 종교적 르네상스를 일으킵니다. 샤를마뉴는 자신의 통치 기간 동안 학문과 예술을 장려했고, 이를 통해 유럽의 카롤링거 르네상스라 불리는 문화적 부흥을 일으켰습니다. 그는 수도원과 교회 학교들을 설립하여 학문과 성경 연구를 촉진하고, 라틴어 문법 및 고전 문헌을 보존하는 데 기여했습니다. 그리고 끝내 AD.800년, 교황 레오3세(Pope Leo III)는 샤를마뉴에게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의 관을 씌워 줌으로써 교황이 황제의 왕관을 씌우는 상징적인 행위로 교황의 수위권을 곤고히 하는게 결정적 기여를 했습니다. 이는 교황이 세속 권력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강력한 종교적 권위를 존재로 자리매김 하는 중요한 사건이었습니다. 이렇게 강도들이 약탈물을 나누듯 지상의 통치자들은 지상 권력을 얻기 위해 교황을 추켜세워 주었고, 교황은 모든 교회들에 대한 재판권과 영적 권력을 차지하기 위해 황제의 권력에 기댔습니다. 권력을 쥐기 위한 인간의 탐욕이 만들어낸 결과이지요. 그 이후 이어진 현대 교황들의 배교와 부패상은 눈 뜨고 봐줄 수 없습니다. 저들은 스스로를 ‘지상 교회의 최고 머리이며 전 세계 교회의 보편적 감독’이라고 주장합니다. 로마 교황만이 재판권을 가지며, 또 자신은 누구에게도 판단을 받지 않는다고 합니다. 오직 그는 하나님만이 판단한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사실 이것은 마음대로 타락하겠다는 소리와 똑 같습니다. 이런 교황권을 지지하기 위해 저들은 수많은 위조 문서들까지 확보해 놓았습니다. 그러나 이런 교황주의자들의 헛소리는 이미 오래 전에 그레고리우스에 의해 충분히 비난 받은 것 아닙니까? 그는 지금 교황권이 주장하는 위험들을 피하기 위해, ‘머리’나 ‘명령’등 오해를 일으킬만한 말은 아예 사용하지도 않았었습니다. 그레고리우스도, 베르나르도도 자신의 교회들 때문에 심각히 개탄했지만 그들 때보다 지금 교회는 백배 더 부패했습니다. 지금 로마에는 교회도 감독도 없습니다. 아무도 감독의 일을 하려하지 않습니다. 아무도 그리스도께서 제정하시고 요구하시는 봉사를 하지 않습니다. 아무도 자기 양들을 돌보지 않습니다. 감독도 없는데 어떻게 교황이 있겠습니까? 세상 왕은 의무를 다 하지 않아도 왕이지만, 감독은 그렇지 못합니다. 로마 교황들이 복음의 교리가 가르쳐지고 부흥하는 것을 방해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복음이 승리한다면 저들의 왕국은 붕괴되고 말 것을 자신들이 잘 알기 때문입니다. 이제 배교밖에 남아 있지 않는 저들은 미친듯이 자기들의 권력을 지키기 위해 복음을 대적합니다. 만약 저들이 예수님의 말씀(눅22:32)을 도용하여 교황은 절대 실수 할 수 없는 존재라고 주장한다면, 그와 똑같은 논리에 의해 교황은 모두 사탄이 되어야 합니다(마16:23). 그러므로 교황은 ‘하나님의 성전에 앉기로’(살후2:4) 예정된 적그리스도라고 밖에 볼 수 없습니다(단7:25; 계3:10; 13:5). 이런 적그리스도의 표징은 스스로 하나님의 자리에 앉아 하나님의 영광을 도적질 하는 것입니다(살후2:4). 성전에 세워진 우상이라고 그 앞에 절해도 될까요? 정리합니다. 암세포는 처음에 발견하기가 대단히 어렵습니다. 침입자가 아니라 배교자이니까요. 그리고 일단 증식을 시작하면 어마 어마한 속도로 증식합니다. 자기의 모체를 아주 파괴하기까지 자랍니다. 그러므로 성경에서 떠나지 않는 것이 상책입니다. 교회의 직분과 정치 제도는 주님이 보여주신 길로만 조심스럽게 걸어야 합니다. 권력을 탐하고 자기 욕망을 채우려는 것은 주님을 배반하지 않고는 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높아지고 싶고, 대접받고 싶고, 더 많은 것을 누리고 싶은 마음이 꿈틀거립니까? 얼른 십자가 앞에 무릎꿇고 주님의 도우심을 구하십시오. 그러면 우리 안에 있는 암세포를 초기에 치료할 수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인간의 타락한 욕망을 채우려 신앙생활하지 마시고 하나님의 형상을 나타내기 위해 신앙생활 함으로 암에 걸린 환자처럼 살다 죽는 것이 아니라 건강한 믿음으로 사람으로 살다가 천국 가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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