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칼빈의 기독교강요를 메타포로 배우는 곳입니다.
아래 링크를 누르셔서 네이버 카페 / 소풍교회 배움터 / 로 가시면 기독교강요 자료를 보실 수 있습니다.
이곳을 눌러 보세요.
기독교 강요 4부 8장 : 고속열차 철로(말씀을 떠난 로마 교회의 권세-교리권) | 임병욱 목사 | 2024-11-07 | ||||
|
||||||
[성경본문] 디모데후서3:15-17절 개역개정15. 또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16.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17.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
오늘은 제4부 8장입니다. 탐욕과 욕망을 채우려고 만들어진 교황제도가 교회에 끼친 해악이지요. 그 중에 가장 큰 것은 교회가 성경의 바른 교리를 떠났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고속열차 철로’라는 제목으로 공부해 봅니다. 우리나라도 최고시속 300km를 넘는 속도로 달리는 고속열차가 있습니다. 서울-부산을 2시간 만에 달리지요. 경부고속철도의 총구간 연장은 412km. 그 가운데 터널이 189km, 교량이 112km나 됩니다. 전체 구간의 73%나 되는 것이지요. 워낙 속도가 빠르기 때문에 탈선을 막기 위해 모든 노선을 거의 직선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랍니다. 기술의 핵심은 빠른 속도를 위해 공기의 저항을 최대로 줄이는 것과 고속에 따른 탈선의 위험을 최소화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철로의 이음매를 특수용접으로 처리해서 전구간이 하나의 레일인 것처럼 만들었다고 합니다. 덜커덩 거리는 소리가 나지를 않지요. 주님은 교회에 위대한 권한들을 주셨습니다. 교회의 생명과 풍성한 행복을 위한 것이지요. 그런데 교회가 그 권한들을 사용할 때는 꼭 떠나지 말아야 할 ‘길’이 있습니다. 신구약 66권의 말씀입니다. 성경을 떠나면 곧 탈선입니다. 주님이 교회에 주신 권한은 세 가지 입니다. 첫째가 교리를 제정하는 권한입니다. 신조를 제정하고 해석하는 것이지요. 둘째가 교회를 다스리는 입법권, 그리고 셋째가 교회를 치리하는 재판권입니다. 교회의 권한은 일부는 감독들 개개인에게 속하고, 또 일부는 지방 회의나 총 회의에 속합니다. 이 권한은 영적 권한으로서 교회가 교회답기 위해서 꼭 가져야 하는 것으로서, 이 모든 권한이 다 어디에서 운행되어야 한다고요? 성경 위에서 달려야만 한다고요. 성경만이 교회의 권한이 달릴 유일한 철로입니다. 이 성경을 벗어나면 탈선하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은 왜 이런 권세들을 교회에 주셨을까요? 교회를 바르고 건강하게 세우려는 것이지요(고후10:8; 13:10). 그래서 그 권한을 잘 못 사용하면 오히려 교회를 파괴합니다. 교회가 교리의 권세를 바르게 사용할 수 있는 길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권한을 사용할 때 주님의 종처럼 사용하면 됩니다(고후4:1). 곧 교리를 만들거나 신조를 제정할 때 반드시 그리스도의 말만을 들어야 합니다(마17:5). 그렇지 않으면 철로를 이탈한 고속열차와 같이 됩니다. 그 파국적 결말을 쉽게 상상할 수 있지 않습니까? 교회의 권한은 반드시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제한 됩니다. 따라서 우리는 성경에서 성령 하나님이 제사장이나, 예언자나, 사도들, 그리고 그들의 후계자들에게 권세와 영광을 주실 때에 그들 개개인에게 주신 것이 아니라 그들이 임명된 직분에 주셨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 말을 한마디로 바꾸면 성령께서는 그 모든 권세와 영광을 그들이 선포하도록 위탁받은 하나님의 말씀에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자기들이 받은 주의 말씀이 아니면 한 마디도 할 수 없었습니다. 모세도 그랬고, 제사장도 그랬습니다(출3:4; 말2:4,6-7). 저들은 여호와의 사자였고, 따라서 백성들은 저들의 말을 경외하고 믿었어야 했습니다(출14:31; 신17:9-13). 예언자들도 예외가 없었습니다. 저들도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파수꾼’으로 세우신 자들이었습니다(겔3:17). 저들은 하나님이 주시지 않은 말씀은 ‘겨’와 같이 여겼고(렘23:28), 그래서 ‘여호와께서 말씀하셨으니’ 라는 표현들을 부지런히 사용합니다. 사도들은 또 어땠습니까? 사도들은 정말 존귀한 칭호를 얻은 사람들입니다(마5:13-14; 18:18; 요20:23). 그런데 그들도 역시 단 한마디도 자기 마음대로 떠들어 댈 수 없었습니다. 오직 주께서 주신 것들만 전할 수 있었습니다(마28:19-20). 놀라운 것은 우리 주님까지도 그 법칙을 자신에게 적용하셨다는 사실입니다. “16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 교훈은 내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것이니라.”(요7:16). 그러므로 주님의 모든 일꾼들은 다 주님까지도 받으셨던 그 법칙을 따라야만 합니다. 신구약의 모든 말씀은 다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마치 한 근원에서 여러 갈래 냇물이 나뉘어 흐르듯이 신구약의 다양한 계시들은 다 그 아들을 통해서 받은 것입니다(마11:27; 고후3:18).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 율법을 주신 후에 그것을 모든 제사장들이 붙잡을 유일한 표준이 되게 하셨습니다(신4:2; 13:1). 후에 예언자들은 새로운 말씀들을 더 했는데, 그것은 더 한 것이 아니고 이미 받은 율법을 해석하고 적용한 것이었습니다. 물론 하나님은 예언자들의 예언과 성령의 영감을 받아 기록한 역사를 말씀에 더해 주셨습니다. 또 나는 시편도 예언서에 포함 시킵니다. 시편에도 예언의 말씀들을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율법과 예언서와 역사서, 그리고 시편으로 구성된 구약의 말씀들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위한 하나님의 말씀이었고, 제사장들과 교사들은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까지는 오직 그 표준에 만 맞추어 가르쳐야 했습니다(말4:4; 신5:32). 그러므로 이스라엘은 다른 교훈을 구하지 말아야 했지요. 오직 성경만이 자기가 달릴 철로였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은 육신으로 오신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 됩니다. 하나님의 지혜가 육신으로 우리에게 나타나셨을 때, 그 말씀하시던 방법이 이전과는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전에는 희미하게 비추었지만,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에게 보이신 후에는 밝은 태양이 비추듯 분명하고 충만해졌습니다(요1:14). 아버지 하나님에 대해서 우리가 알고 또 묵상해야 할 것들을 밝히 보여주신 것이지요. 그리고 모든 것의 마지막 날에 아들로 우리에게 말씀하셨다는 것은 이제 하나님의 계시가 완전히 드러났다는 것입니다(히1:1-2: 요일2:18; 벧전1:20; 딤후3:1). 앞으로는 더 이상 이 사람 저 사람을 통해 계시를 더하지 않으시겠다는 뜻입니다. 곧 그리스도께서는 교회의 모든 교사들에게 최종적이고, 영원하며, 완전한 표준이 되신다는 것이며, 자기 뒤에 더 이상 다른 사람들이 첨가할 말을 남겨 두지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오직 그리스도만을 유일한 교사로 모셔야 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만을 자신이 달릴 철로로 삼아야 합니다.(마17:5). 그래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원칙을 확실히 지켜야 합니다. 첫째 신구약 66권에 포함되지 않은 것은 어떤 것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정되거나 교회 내에서 자리를 얻도록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둘째 교회가 교리를 만들고 해석하는 유일한 근원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뿐이라는 것입니다. 주께서 사도들에게 가르치라고 명령하실 때에도 그 조건을 달고 계십니다(마28:19-20). 즉,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치라고 하신 것입니다. 또 저들에게 주신 진리의 영도 그리스도의 입으로 가르치신 것들을 생각나게 하시는 외에는 새 것을 더 하시지 않으셨습니다(요14:26). 우리는 이 한계를 주의 깊게 묵상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성경을 직접 기록한 사도들은 물론, 그 기록된 말씀을 붙잡을 뿐인 그들의 후계자들은 더더욱 주의 말씀을 벗어날 자유가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왜 이런 제한을 두셨을까요? 혹시 답답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여러분, 철로를 달리는 고속열차가 철로 때문에 답답해 할까요? 하나님이 하나님의 말씀만을 교회의 유일한 교훈으로 주신 것은 교회로 하여금 안전하게, 건강하게, 그리고 풍성하게 보존되고 자라나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목사에게 순수한 말씀만큼 강력한 무기는 없습니다. 목사가 순수한 말씀에 붙잡히면 붙잡힐수록 하나님의 능력이 교회에 나타날 것입니다. 그 말씀으로 목사는 모든 세상 권력과 지혜를 주님께 굴복 시키고, 하나님의 집을 세우며, 이리들을 내 쫓고, 교훈하고, 책망하며, 매고 풀며, 필요한 때에는 천둥과 번개를 던질 수도 있습니다. 사탄과 지옥의 권세를 이길 수 있는 견고한 믿음은 오직 깨끗한 그리스도의 말씀으로만 말미암는 것이지요(롬10:17). 하나님은 하나님만이 우리에게 교리를 가르치는 영적 선생이 되고 싶으신 것입니다. 말씀을 떠나 교황의 권력과 영광을 높이는 로마 카톨릭 교회의 교리는 철로를 탈선한 고속열차와 같습니다. 열차에 있어서 철로를 이탈한 것 보다 더 큰 사고가 어디 있겠습니까? 로마 교회의 가장 큰 실수는 성경 말씀을 떠나 성경에도 없는 교리와 신조를 만들어낸 것입니다. 말씀의 지도 아래 있는 교회의 권한과 영적 폭군들이 다스려 온 로마 교회의 권한 사이에는 그리스도와 벨리알 사이 만큼 차이가 있습니다(고후6:15). 교황의 통치아래 있는 로마 교회의 권한은 갖가지 죄악과 우상숭배의 어머니가 되었습니다. 그들은 총 회의가 곧 보편 교회의 모습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리고 그 총 회의는 성령의 직접적인 지배를 받으며 따라서 오류를 범할 수 없다고 결론을 내립니다. 그리고 그 회의를 구성하고 지배하는 것이 바로 자신들이기 때문에 자기들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곧 그 회의들의 결정이 되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곧 성도의 믿음은 자기들의 결정에 의해 서기도 하고 망하기도 한다는 것이지요. 그리고는 그들은 말씀을 멸시하고 자기들 기분대로 교리를 만들어 낸 다음 사람들에게 그것을 믿으라고 강요합니다. 그리고 만약 누구든 그 교리에 확실한 찬성의 몸짓을 보이지 않으면 그를 그리스도인으로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자기 철로를 떠난 열차가 난동을 부리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교황주의자들은 성경의 약속처럼(요14:16-17; 16:13; 마28:20) 성령의 인도를 받는 교회는 기록된 말씀이 없어도 안전하게 전진할 수 있고, 어디를 가더라도 진리만을 생각하며 말할 수 있기 때문에 교회의 회의가 하나님의 말씀을 넘어서거나 혹은 말씀과 상관없이 어떤 교리를 가르치더라도 그것은 곧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정되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성령의 인도에 대한 약속은 개인에게 준 것이 아니라 교회 전체에만 준 것이며 따라서 교회는 완전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어떻게 개인과 교회 전체를 분리할 수 있단 말입니까? 그 약속들은 교회 전체에 주실 뿐 아니라 성도 개개인에게도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개인이든 교회 전체든 지상에 있는 동안은 허물투성이입니다. 지상 교회는 펠라기우스나 카타리파나 도나투스파 등의 주장처럼 완전한 것이 아니고, 날마다 성화되어 나가야 하는 연약한 존재입니다. 성령이 충만해지는 것은 좋은 현상입니다. 그러나 성령이 교회와 함께 하셔도 교회는 여전히 말씀에 매여 있습니다. 성령은 교회의 연약함을 고려하여 자신이 교회에 주신 말씀에 스스로 매이기로 작정하셨습니다. 따라서 성령도 말씀과 분리될 수 없습니다. 그렇기에 성령과 또는 성령의 계시는 반드시 주의 말씀과 함께 교회에 내주하십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셨다면 교회는 카톨릭처럼 무지의 길로 돌진하든지 아니면 다 흩어졌을 것입니다. 철로를 잃은 열차처럼 말입니다. 성령은 반드시 주의 말씀과 함께 교회에 내주하십니다(요14:26; 16:7,13; 12:49; 14:10). 그러므로 말씀을 떠나 성령의 계시를 입에 올리는 자들은 모두 자기의 어리석고 사악한 생각을 떠드는 것일 뿐입니다(벧전1:13; 5:8; 계22:18-19). 그런데 저들은 사도들의 글에 아직 더 보탤 것들이 남아 있다고 말 합니다(요16:12). 그래서 그것들을 교회의 오랜 관습과 전승에서 받아와야 한다는 것이지요. 하지만 처음에는 연약하고 유치하여 감당치 못하던 사도들도 주의 약속대로 진리의 영의 인도하심을 받아(요16:13) 교회에 필요한 교리를 충분히 기록할 수 있었습니다(딤후3:15-17). 그 교리들은 교회를 바르고 건강하게 세우기 위한 기둥들이지요. 물론 저들의 주장처럼 니케아 회의에서 삼위일체 교리를 선언할 때 사용한 ‘본질’이란 말도 성경에는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단어는 성경이 가장 분명하게 증거하시는 내용들을 그 의미에서 벗어나지 않으려 표현한 것에 불과합니다. 데오도레트가 기록했듯이 콘스탄티누스 회의에서는 신구약 성경이 교리에 대한 교회의 모든 필요를 충족시켜 준다고 선언했습니다. 성경을 떠나서 교회가 필요한 것을 찾으면 안 된다는 말이지요. 따라서 지금 로마 교회 교도들은 자기들이 의지하는 거룩한 교회 회의의 전통조차도 스스로 무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교회의 권한, 특히 교리를 세우거나 해석하는 권세는 오직 성경 안에만 머물러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고속열차는 철로를 떠나지 말아야 합니다. 떠나는 순간 수많은 생명들이 파멸에 이릅니다. 마찬가지로 교회의 교리 역시 주님의 말씀을 떠날 수 없습니다. 교리는 교회에 생명과도 같은 것입니다. 그래서 더욱 그 모든 교리는 오직 그리스도의 말씀만 따라 가야 합니다. 성령도 그렇게 하시기로 작정하셨다면 우리들이야 얼마나 더 그렇게 해야 하겠습니까? 만일 교회가 성경에도 없는 교리를 만든다면 그것은 철로를 떠난 열차처럼 수많은 영혼들을 파멸에 이르게 할 뿐입니다. 교회의 모든 권한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제한됩니다. 말씀의 선로 위에 서 있어야만 한다는 것이지요. 물을 떠난 물고기는 죽듯이 말씀을 떠난 교회의 권한은 부패하고 영혼을 파괴합니다. 성경에서 떠난 로마 카톨릭의 대표적인 교리들은 첫째가 교황 무오설입니다. 교황은 죄가 없기에 교리를 선언할 때도 오류가 없다는 것이지요. 둘째는 마리아 숭배입니다. 마리아는 원죄도 없고, 죽음도 맛보지 않고 승천했기에 중보자가 될 수 있다는 교리입니다. 셋째는 연옥 교리입니다. 이미 앞에서 충분히 공부했지요? 천국에 들어가지 전에 죄를 씻는 장소라는 겁니다. 넷째는 성례전의 효력입니다. 7성례(세례, 견진, 성체성사, 고해성사, 병자성사, 신품성사, 혼인성사)를 구원의 필수적인 수단으로 여깁니다. 다섯째가 성인 숭배 및 중보 기도 (Veneration of Saints)입니다. 여섯째가 전통의 권위이지요. 교회의 전통을 반드시 따라야 한다는 겁니다. 그러나 이 모든 교리들은 전혀 성경에 근거가 없는 것들이지요. 사랑하는 여러분, 교회는 개인이든 총 회의든 결코 성경을 떠날 수 없습니다. 성경은 교회가 달려야 할 안전한 철로이기 때문입니다. 늘 성경 안에서 주님이 주시는 풍성한 은혜를 누리는 교회 생활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