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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강요 4부 16장 : 탯줄의 신비(유아세례의 유익) | 임병욱 목사 | 2024-11-07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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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창세기17:10-12절 개역개정10. 너희 중 남자는 다 할례를 받으라 이것이 나와 너희와 너희 후손 사이에 지킬 내 언약이니라 11. 너희는 포피를 베어라 이것이 나와 너희 사이의 언약의 표징이니라 12. 너희의 대대로 모든 남자는 집에서 난 자나 또는 너희 자손이 아니라 이방 사람에게서 돈으로 산 자를 막론하고 난 지 팔 일 만에 할례를 받을 것이라
오늘은 제 4부 16장입니다. 유아세례에 관한 말씀이지요. 믿음의 가정에서 난 자녀는 부모와 함께 같은 언약에 매여 같은 언약 공동체의 일원이 된다는 표로 유아세례를 받습니다. 부모들은 자기 자녀의 유아세례를 통해 경건의 확신과 헌신의 도전을 받고, 그 자녀들도 자라면서 세례의 표징을 생각할 때마다 믿음에 큰 격려를 받습니다. 이것을 ‘탯줄의 신비’라는 제목으로 공부해 봅니다. 탯줄은 제대(臍帶 배꼽 띠)라고도 하는데 태아의 배꼽과 태반을 연결한 가늘고 긴 띠 모양의 줄입니다. 그 속에는 벽이 두꺼운 2개의 제 동맥과, 벽이 얇고 구경이 큰 1개의 제 정맥이 있습니다. 탯줄은 태아에게 꼭 필요한 산소나 영양물을 어머니의 몸으로부터 받아 태아에게 전달해주고, 또 반대로 태아에게서 나오는 탄산가스나 노폐물을 어머니의 몸으로 밀어 내주는 유일한 통로가 됩니다. 어른의 기도와 식도의 역할을 하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탯줄이 눌려 혈류가 멈추면 태아는 위험에 처하게 됩니다. 경건한 부모의 아기들이 세례를 받는 것은 그 부모와 아기가 ‘언약의 탯줄’로 서로 연결되는 것과 같습니다. 즉, ‘언약의 탯줄’인 유아 세례는 그 아기가 경건한 부모와 함께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언약의 탯줄’은 아기가 계속 믿음 안에서 성장하여 결국엔 자기 입으로 신앙을 고백하도록 도와 줍니다. 그런데 재 세례파 사람들은 유아 세례를 맹렬하게 공격합니다. 유아 세례가 ‘하나님의 명령에서 온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외람된 생각과 타락한 호기심이 끌어 들인 제도이며, 결국에는 미련한 자기 만족감을 위해 경솔하게 관습화된 것이라’고 말합니다(AD.1527년. 재세례파가 Schleiteim에서 제정한 신앙고백 1조). 그러나 유아 세례는 그리스도께서 세우신 세례 제도와 그 표적의 본질에 가장 잘 어울립니다. 구약의 할례를 보면 세례가 보입니다. 이제 나는 유아 세례가 확실히 성경에 근거한 것이며 주님이 세운 제도라는 사실을 증명할 것입니다. 우선 세례의 효력과 그 본질이 무엇인지부터 알아야 합니다. 어떤 표징이건 그것의 외형적인 의식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표징이 담아 내려고 하고 있는 하나님의 약속과 영적 비밀이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세례에 대해서도 물을 뿌리는 것이냐 아니면 물에 잠그는 것이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세례가 나타내려는 하나님의 약속이 중요합니다. 그 약속과 효력이 무엇입니까? 첫째 그리스도의 피로 우리 죄를 씻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둘째 주의 죽으심에 연합하여 우리의 육을 죽이는 것입니다. 셋째 중생함으로 새 생명과 그리스도와의 교제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 더 보탠다면 그것은 사람들 앞에서 우리의 신앙을 증거하는 상징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교회에는 세례가 제정되기 훨씬 전에 벌써 할례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할례는 세례의 완벽한 모형입니다. 그 둘을 잘 비교하면 세례의 의미와 유아세례의 타당성을 분명히 알게 될 것입니다. 우선 할례의 의미를 살펴 보면 세례의 그것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할례도 다음 몇 가지 약속을 담고 있습니다. 첫째 죄를 씻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받은 영생의 약속을 인친 것이 바로 할례인데(창17:7,10; 눅20:37-38; 마22:32; 엡2:12), 영생에 들어가는 첫 걸음이 죄를 용서 받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둘째 육을 죽이고 중생하게 해 주는 것입니다(창17:1; 신10:16; 30:6; 렘4:4; 겔16:30). 셋째 교회에 가입하는 표로서, 하나님의 가족으로 선택되었다는 것을 확인해줍니다. 또한 자신들에게는 하나님을 섬기는 무리에 참가하겠다고 고백하는 표가 됩니다. 이처럼 우리가 세례에서 받는 영적 약속을 우리 조상들은 할례에서 받은 것입니다. 그리고 그 ‘아브라함의 복’을 모든 족속에게 나누어 주신 그리스도께서 곧 세례와 할례 모두의 유일한 기초이십니다(창12:2-3; 갈3:14). 그러므로 할례와 세례의 차이가 있다면 외형적인 방법 뿐, 그 약속과 효력은 똑 같습니다. 신약 교회의 세례는 구약 교회의 할례를 대신하며, 할례가 옛 백성에게 한 일을 세례가 우리 가운데서 수행한다는 것이 분명합니다. 그렇다면 왜 세례에서 유아들을 제외 시켜야 한단 말입니까? 할례 안에서는 어른과 함께 같은 언약의 은혜안에 포함 될 수 있었던 어린 아기들이 그리스도께서 오심으로 인해 은혜 밖으로 쫓겨 났다는 말인가요(창17:12-13; 스9:2; 사6:13)? 참으로 그것은 흉악하고 모독적인 생각입니다. 예수님은 오히려 옛 언약을 완성하고 확대하시러 오셨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할례에서처럼 그리스도인의 자녀들도 부모 중 한쪽만 믿음이 있어도 우상숭배 하는 불결한 집의 자녀들하고는 전혀 다르다고 못 박습니다(고전7:14). 구약에서 할례가 그런 효력이 있었다면 신약의 세례는 더욱 효력이 있어야 할 것 아닙니까? 그러므로 할례나 세례나 그 내적인 신비, 즉 언약의 내용이나 가치, 그리고 그 효력과 언약을 확인해야 할 이유나 모두 똑 같습니다. 다르다면 그 확인하는 방법만 다를 뿐입니다. 그런데 구약이 할례는 이중적 기능이 있었습니다. 즉, 어른이 받는 할례가 있었고, 갓난 아기가 받는 할례가 있었습니다. 아브라함과 이삭은 각각 그 둘의 대표적인 예가 됩니다. 어른이 개종할 경우에 반드시 할례를 받아야 했고, 또 하나님을 섬기는 가정의 자녀들은 난지 8일만에 할례를 받아야 했습니다. 세례도 그와 같은 것 아닙니까? 어른이 회개하고 처음 예수님을 영접하면 그 표로 세례를 받습니다(행2:37-38; 8:38). 그렇기에 믿음의 가정에서 난 자식은 갓난 아기 때, 부모와 함께 같은 언약에 매여 같은 언약 공동체의 일원이 된다는 표로 세례를 받는 것입니다. 이방 세계에서 자란 어른의 경우 그 때까지는 하나님의 약속에 대해 외인이었기 때문에 세례를 통해 언약 공동체에 가입하지만, 그리스도인에게서 난 자식은 날 때부터 언약의 상속자로 났기 때문에 언약의 가족으로서 유아 세례를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에서 세례에 관해 하신 말씀들 중에 어른에게 하신 것을 유아들에게도 그대로 적용하려 해서는 안됩니다. 구별할 것은 구별해야지요. 유아세례의 타당성은 예수님께서 어린 아이들을 영접한 것을 보면 더 분명합니다. 제자들은 어린이들이 예수님께 나가는 것을 막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어린이들이 자기에게 오는 것을 금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것도 제자들을 아주 엄히 꾸짖으시면서 말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제자들의 귀에 충격적이었습니다. ‘천국은 이런 자의 것이니라’(마19:13-15). 여기서 ‘어린이’를 가리킬 때 쓰신 단어는 ‘갓난아이와 어린아이’(브레페 카이 파이디아)인데 헬라어로 모두 ‘젖먹이’를 의미합니다. 물론 고집쟁이들은 이 말이 꼭 ‘젖먹이’가 아니라 성품이 ‘젖먹이 같은’ 사람들을 의미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것은 나이 문제입니다. 나이가 어린 것 때문에 예수님께 나오는 것이 금지 당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세례가 무엇입니까? 우리가 예수님께로 갔다는 것을 확인하는 것 아닙니까? 우리가 천국의 상속자가 되었다는 것을 증거 하는 것 아닙니까? 그렇다면 예수님도 천국을 허락하신 우리 아기들이 세례를 받지 못할 이유가 어디 있습니까? 왜 어리석게도 아기들이 예수님께 나가는 것을 가로막는다는 말입니까? 어디서 그런 열심이 나오는지 참으로 난처할 뿐입니다. 바울은 난지 8일만에 할례에 참여 했던 모든 구약의 백성들이 다 그리스도와 교제를 가진 것이라고 증거 해 줍니다 (엡2:11-13). 하물며 새 언약의 세례가 그런 효력이 없겠습니까? 그러므로 모든 믿는 가정은 마땅히 자녀들에게 유아세례를 주어야 합니다(출20:6). 부모들은 유아세례를 통해 하나님의 언약이 자기 자녀들의 몸에 새겨지는 것을 보면서 경건의 확신과 도전을 받습니다. 너그러우신 하나님이 자기 자녀들까지 받아 주시는 은혜에 감격하며 하나님을 찬양하고 비상한 행복감에 젖어 아버지 하나님을 더욱 사랑하겠다는 결심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유아세례를 받은 자녀들은 교회의 다른 지체들로부터 유아세례가 없는 자녀들보다 얼마만큼은 더 인정을 받습니다. 그리고 자신에게 있는 그 표징을 생각할 때마다 하나님을 더욱 잘 섬기고 예배하겠다는 각오를 새롭게 하게 됩니다. 따라서 자기 자녀들에게 세례 주는 것을 멸시하는 자들에게 벌을 주시겠다고 경고하신 하나님의 위협을 우리는 깊이 두려워 해야 합니다(창17:14).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약의 탯줄’을 잘라 버리려는 자들이 있습니다. 이미 충분히 증명했다고 생각합니다만 다시 한번 반대자들의 주장들을 반박하면서 유아세례의 타당성을 살펴봅니다. 반대자들은 성경에 유아세례에 대한 기록이 없다는 이유를 들고 나옵니다. 그렇다면 온 가족이 세례를 받았다는 기록에서 갓난 아기들은 틀림없이 제외 되었을 것이라는 말입니까? 오히려 포함된 것으로 보는 것이 자연스럽지 않을까요? 그들의 논리대로라면 사도 시대의 성찬에서 여자들이 참여 했다는 기록이 없다고 오늘날 주의 성찬에서 여자들을 다 빼야 한단 말입니까(행16:15-32)? 모든 고대 저술가들은 다 유아세례가 사도 시대에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확신하고 있습니다. 또 그들은 세례는 꼭 스스로 회개한 다음에 받아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이미 설명한 것처럼 그들은 ‘탯줄의 신비’를 모르나 봅니다. 할례와 마찬가지로 세례도 어른의 경우와 아기의 경우는 구분되어야 합니다. 어른은 복음을 알고 세례를 받지만 아기는 세례를 받은 다음 장성하면서 복음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믿는 가정의 아기는 당연히 한 언약의 끈으로 묶입니다. 어른이 중생하고 언약 공동체에 가입하는 길은 복음을 듣고 회개하는 것밖에 없습니다(벧전1:23; 롬10:17). 그것이 유일한 길이지요. 그러나 아기들이 중생하고 천국에 가입되는 것은 하나님이 다른 방법으로 부르십니다. 아기들이 우리 어른들과 똑 같은 믿음을 받았다든지 또 믿음에 대해 똑 같은 지식을 받았다고 단정짓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 결정은 경솔하게 내리지 말고 남겨 두기로 하십시다. 그러나 어쨌든 하나님은 장차 충만한 빛으로 비추실 아기들에게는 작은 불꽃으로 비추어 주십니다. 그러므로 다 장성하지 못하고 죽는 아기들도 언약의 상속자라면 하나님이 준비하신 또 다른 방법으로 중생하고 구원 받아 천국에 들어갈 것입니다. 따라서 아기들은 회개할 능력이 없으니까 세례 줄 수 없다는 말은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르는 말입니다. 할례도 분명히 회개의 표이지만 갓난 아기들에게도 주었다는 사실을 곰곰이 생각해 보면 생각이 좀 달라지지 않을까요? 또 반대자들은 마치 예수님의 ‘지상 명령’(마28:19; 막16:16)이 세례에 관한 모든 것을 가르치는 것마냥 흥분해서 떠듭니다. 그러나 그 말씀은 복음을 전파하라는 것입니다. 세례는 복음 전파와 가르치는 것에 대한 부록으로 첨가하고 계십니다. 저들이 도대체 무슨 재주로 예수님의 그 명령으로 유아 세례를 부인하겠다는 것인지 신기할 뿐입니다. 또 저들은 아기들에게 성만찬을 허락하지 않는 것으로 보아 세례도 합당치 않은 것이라고 말합니다. 물론 자기를 살필 능력이 없는 아기들이 성찬을 받을 수는 없습니다. 세례와 성찬은 또 다르기 때문입니다. 성찬은 자기를 반성하고 살필 줄 알아야 참여할 수 있습니다(고전11:29). 그러나 그것은 할례와 유월절의 관계와도 같습니다(출12:26). 옛 언약에서도 허락된 것이 왜 새 언약에서 허락될 수 없단 말입니까? 물론 세례를 받는 것과 구원이 필연적인 관계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참 언약의 상속자들에게 그 표징은 효력 있는 언약을 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자녀들까지 하나의 언약으로 묶어 주시는 하나님의 자비 하심에 늘 감사하며, 유아세례를 통해서 우리 자녀들을 하나님께 기꺼이 드리고 교회에 가입 시켜야 합니다. 유아 세례는 ‘언약의 탯줄’과 같습니다. 부모의 신앙 고백으로 받는 것이지만 그 ‘탯줄’을 통하여 자녀들은 언약을 먹고 마시며 자라게 됩니다. 여러 가지 이유들을 찾아 내어 유아 세례를 없애려는 열심은 사탄에게서 받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유아세례를 통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거부하는 것은 어리석은 것입니다. 각 가정마다 더욱 유아세례의 복을 소망하시고, 언약의 탯줄을 이어가지시길 바랍니다. 요즘같이 출산 기피 문화가 확산하는 시대에 우리는 더욱 언약의 탯줄을 이어야겠습니다. 각 가정에서 젊은이들에게 아이 낳기를 적극 권장하시고, 모든 가정이 언약의 탯줄로 이어지는 복이 있으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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